SK하이닉스는 지난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영업이익 5조원이 넘는 눈부신 실적을 냈다. 올해 수요둔화로 실적이 주춤해도 2조원 중반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세계 반도체 업계의 공고한 과점체제 때문이다. D램 부문에서는 삼성전자·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 3개사가, 낸드 부문은 여기에 2곳을 더해 5개사가 시장을 나눠 가지고 있다. 하이닉스가 원래부터 시장의 강자는 아니었다. 2000년대 전후 20여곳의 반도체 회사들이 치킨게임을 벌일 때 출혈경쟁 속에서 유동성 위기로 청산 위기에까지 몰렸고 마이크론에 팔릴 뻔했다. 하지만 정부와 채권단의 인내와 대규모 지원, 회사 측의 절박한 자구노력과 기술개발 끝에 치킨게임에서 이기며 지금은 대표적인 알짜기업 대열에 들어섰다. 27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해운과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우리 경제를 지탱하던 핵심 제조업들이 세계 경기부진과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 속에서 공급과잉으로 허덕이며 한계상황에 몰려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랐다.
벼랑 끝에 선 해운업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두 회사가 일제히 자율협약에 빠져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정부와 채권단이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용선료(선박임대료)나 선박금융 같은 기타 채무를 먼저 조정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조선업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빅3’가 해양플랜트 부실로 수조원대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들어 극심한 수주가뭄으로 1~2년 내 공장 가동을 일부 멈출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중소형 조선사는 하나같이 채권단의 도움 없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와 채권단 사이에서는 대규모 설비와 인원 감축에 이어 3개사 플랜트 부문 통합론과 빅딜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과 달리 철강업은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조금이나마 회복의 기운을 보이고 있다. 두드러진 점은 철강 역시 중국 등과 치킨게임을 벌이다 중국 철강사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면서 가격을 인상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손을 잡으면 얼마든지 위기를 넘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석유화학 업계도 만성적 공급과잉을 겪고 있는 테레프탈산(TPA) 부문 구조조정만 마무리하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과점체제인 해운업이나 한국이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조선·철강업 모두 지금의 치킨게임에서 승리할 경우 경영 정상화는 물론 국가 경제에도 커다란 결실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술이 능사라는 생각을 버리고 ‘적어도 패배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아래 구조조정을 진행해 제2, 제3의 SK하이닉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2000년대 마이크론에 팔렸다면 지금의 반도체 강국에 이르지 못했을뿐더러 부와 고용 창출도 없었다”며 “위기기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회복기에 많은 수익을 챙길 잠재력을 지닌 만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