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캐피털 업계 1위 기업인 현대캐피탈이 해외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해외 법인 영업이익과 자산 증가세가 놀라운 수준이다. 금융업계에선 ‘현대캐피탈이 국내에서의 저금리·저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상황을 해외 사업 성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현대캐피탈이 국내 민간기업 중에선 처음으로 그린본드(Green Bond·환경친화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특수 목적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국내 전체로는 수출입은행에 이어 두 번째다. 현대캐피탈은 이번 그린본드 발행을 통해 5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제2금융권 기업이 그린본드를 발행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금융업계에선 현대캐피탈이 해외 연기금 등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 기반을 늘린 것에 더 큰 의의를 두는 모습이다. 국내 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캐피탈의 이번 그린본드 발행은 초우량 등급에 투자하는 미국, 유럽의 장기 펀드 등으로 투자자 저변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캐피탈의 그린본드 발행에서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 확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현대캐피탈이 열을 올리고 있는 해외 사업 확대에 이들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그린본드 발행 한 달 전인 지난 2월, 현대캐피탈은 해외 사업 영업이익 2조 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해외 사업 부문에서 3,66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해외 사업 확대 왜?
현대캐피탈은 2009년 독일에 현대캐피탈 저머니 Hyundai Capital Germany를 설립하면서 해외 사업 진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5년까지 꾸준히 진출국 수를 확대해 현재 러시아, 중국, 인도, 영국, 브라질, 캐나다 등 총 7개국에 9개의 법인을 두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해외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내 금융시장 환경이 크게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에만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인하(현재 1.5%)하는 등 역사적인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현재 국내 금융업체들은 순이자마진 등의 수익성 지표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금융업체들의 수익성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업체들이 조직 규모를 줄이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현대캐피탈을 비롯한 국내 많은 금융업체가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대다수 금융업체의 해외 법인이 현지 교민이나 한국 기업 법인,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탓에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국내 고객들의 편의 증대’ 정도의 역할만 하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장 확대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금융업체 중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은행들의 지난해 상반기 해외 영업점 당기순이익 총합이 3억 7,800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금융감독원의 발표가 이 같은 상황을 방증한다.
현대캐피탈의 놀라운 성장세
국내 금융업체들이 해외 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캐피탈이 최근 놀라운 성장세로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현대캐피탈의 해외 법인 자산 규모는 매년 큰 폭으로 성장했다. 현대캐피탈의 해외 법인 자산 규모는 2015년 상반기 기준 총 34조 원에 달했다. 2009년 이후 연평균 30%대 이상 고성장을 지속해온 결과다.
해외 법인 영업이익도 꾸준히 상승했다. 2012년 3,290억 원이었던 현대캐피탈의 해외 법인 영업이익은 2013년 4,118억 원, 2014년 4,835억 원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자동차 매입 신규 수요 감소(현대캐피탈은 자동차 금융의 비중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해 자동차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신규 법인인 현대캐피탈 캐나다의 영업 적자 등으로 해외 법인 영업이익이 뒷걸음질쳐 3,669억 원을 기록했지만, 이는 일시적 충격이란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를 반영하듯 정태영 현대캐피탈 부회장 역시 “1년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해 달라” 며 향후 지속적인 해외 사업 확장을 주문하고 있다.
치밀한 준비가 성공의 열쇠
현대캐피탈이 해외 사업 부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각국에서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수행을 위한 제반 사항 마련’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2010년부터 ‘글로벌 익스체인지 프로그램 Global Exchange Program’을 운영 중이다. 글로벌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은 한국 본사와 해외 법인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근무지 이동 및 교환 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임직원들은 자신이 근무할 현대캐피탈 국내외 법인을 직접 선택하고 그곳으로 이동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해외 사업 부문 조직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해외 사업실을 중심으로 1실 2팀 구조였던 해외 사업 조직을 해외 전략실, 해외 HR실, 해외 경영 관리실, 해외 리스크 관리실 등 4실 8팀 구조로 확대했다. 명칭도 해외 사업실에서 해외 사업 본부로 격상했다. 조직이 커짐에 따라 35명이었던 해외 사업부 인원도 85명으로 크게 늘었다.
치밀한 시장 조사는 현대캐피탈 해외 사업 성공의 핵심으로 꼽힌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말한다. “현대캐피탈은 어떤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정밀한 분석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의 핵심은 ‘전략적 중요성’과 ‘사업 환경’을 살펴보는 거죠. 전자는 진출할 국가의 시장 규모와 지리학적 위치, 현대·기아차의 상황 등을 살펴보는 것이고, 후자는 해당 국가의 정부 규제와 금융 인프라, 리스크, 지역 경쟁 업체의 현황 등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 외에도 민족과 언어, 현지 자금 조달 능력 등을 추가로 정밀 분석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을 종합한 후에야 이 시장에 들어갈지 말지,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 사업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거의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만큼 성공 확률도 높을 수밖에 없어요.”
◆ 현대캐피탈이 선진국 시장에 더 집중하는 이유
현대캐피탈이 해외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진출한 국가들을 보면, 다른 금융업체들과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금융업체들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장 공략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현대캐피탈은 유럽, 캐나다 등의 선진국 시장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이들 국가에는 강력한 로컬 경쟁 사업자가 존재하긴 하지만, 자동차 구매 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비율이 80%를 넘어 선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현대캐피탈에겐 유리한 시장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동남아시장은 점포 출점 비용이 적게 들고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소비자들에게 자동차 금융이 생소해 전체 시장이 작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 현대캐피탈의 글로벌 파트너들
현대캐피탈의 성공적인 세계시장 공략에는 글로벌 금융업체들과의 파트너십도 많은 도움이 됐다. 현대캐피탈은 해외 사업 진출 초기부터 현재까지 세계적인 금융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각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노하우와 철학 등을 배우고 공유해왔다. 이들 업체와의 파트너십은 현지 시장 이해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고, 결과적으로 현대캐피탈이 현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GE 캐피털은 현대캐피탈과 파트너십을 맺은 최초의 기업이자 가장 대표적인 파트너사로 유명하다. 현대캐피탈은 GE 캐피털과 2004년 인연을 맺었다. 2004년 조인트 벤처 계약을 맺은 이후 두 기업은 재무와 리스크 관리, 금융 상품, IT 기술, 기업 문화
등 전방위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현재까지도 서로의 장점과 사업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GE 캐피털 덕분에 현대캐피탈은 국내 최초로 총부채상환비율(DTI·Debt To Income) 개념을 도입하는 등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현대캐피탈과의 파트너십은 GE 캐피털 내에서도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해외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2009년부턴 GE 캐피탈 외에도 여러 유수의 글로벌 금융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해왔다. 2009년 1,800조 원의 자산을 자랑하는 유럽 최대 은행 산탄데르 Santander와 조인트 벤처를 체결한 데 이어, 2010년에는 소시에테 제네랄과 플릿(Fleet·법인 차량) 금융 제휴를, 2012년에는 BNP 파리바와 자동차 금융 및 플릿 금융 제휴를 맺어 관련 업계를 놀라게 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