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정제과정에서 나프타와 등유·경유에서 황을 없애는 촉매는 모두 수입에 의존합니다.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올해 말부터 자체 개발한 촉매를 투입하기 시작해 장기적으로는 연간 600억원 규모의 촉매를 모두 국산화할 계획입니다.”
지난달 29일 충남 서산시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의 한 연구실. 원유를 정제하는 실제 공장을 20만분의1, 100만분의1 등으로 축소해 만든 시험설비(pilot plant)를 갖춘 이곳에서는 현대오일뱅크가 자체 개발해 올해 말 실전에 투입할 촉매 검증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유공장은 탈황 공정이나 중질유를 분해해 경질유를 만들 때 백금이나 니켈·세라믹 등의 성분을 모아 만든 고체 형태의 값비싼 촉매를 써야 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모두 촉매를 수입하며 현대오일뱅크만도 이에 매년 600억원을 쓰고 있다.
촉매는 만드는 것만큼 운용 기술도 중요하다. 어떤 촉매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원유에서 뽑아낼 수 있는 휘발유 등 고급제품의 양이 달라지고 1%의 차이만으로도 연간 수백억원이 왔다 갔다 한다. 한 공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체 공장 가동을 멈추는 최악의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동안 국내 정유사들이 촉매 개발 대신 수입산의 안정성을 택한 이유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는 ‘도전’을 택했다. 김철현 현대오일뱅크 연구개발1팀장은 “지난 2012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기존 촉매보다 성능이 뛰어난 제품 개발을 끝냈다”며 “올해 말부터 단계별로 자체 촉매 활용도를 높이면 5년 뒤에는 전량 수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촉매 국산화가 완료되면 연간 촉매 구입비용의 약 10%인 60억원을 절감할 뿐 아니라 기존 촉매를 개선한 만큼 정제 마진 개선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현대오일뱅크는 한국화학연구원과 함께 메탄올 제조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대산공장에 이산화탄소와 메탄으로 하루 10톤의 메탄올을 만드는 시험공장도 완공했다. 메탄올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연료이자 플라스틱과 고무 등 각종 생활용품과 산업기자재를 만드는 필수 기초원료다. 현재 매년 필요한 연간 100만톤 이상의 메탄올은 모두 수입한다. 현대오일뱅크는 내년까지 연간 100만톤 규모의 메탄올을 만들 수 있는 상용 플랜트 설계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수많은 파이프와 탱크로 가득한 정유공장은 철강이나 조선 같은 다른 제조업에 비해 겉모습은 아주 조용하다. 공장 주변에 움직이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굴뚝 위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만 현재 쉼 없이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날 찾은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는 안팎으로 변화를 위한 거센 몸부림이 느껴졌다. 실험실과 시험 플랜트에서는 촉매제와 메탄올 같은 신사업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고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합작한 현대케미칼의 혼합자일렌(MX) 공장은 올해 하반기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산공장 앞 공유수면에는 오는 2018년을 목표로 매립작업을 위한 작업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이 땅은 회사의 신규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또 정제설비 고도화를 위한 추가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런 동시다발적 투자를 위해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1조원을 투입한다.
국내 정유산업은 중국의 초고속 성장에 함께 올라타 수출을 늘리며 호황을 누렸지만 최근에는 중국이 자체 설비를 늘리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의 한 관계자는 “시황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도록 적극적인 투자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산=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