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서경이 만난 사람] 이연수 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 "해운·조선 살리는 쪽으로 가야"

구조조정은 정부+채권단+임직원 삼위일체 협력 필수

국가 기간산업 다시 만들려면 천문학적 비용 소요

하이닉스 구조조정 때와 달리 남은시간 많지 않아

빠른 속도로 밀어붙여야 기업도 살고 은행도 살아

시중은행 참여 이끌어내는 주채권은행 역할 중요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정부 지원과 임직원의 고통분담, 채권단의 협조가 필수입니다. 삼위일체가 됐을 때 가능합니다. 특히 현재 얘기가 나오는 해운 사업은 단순히 물동량과 연계해 이익을 내는 게 문제가 아니고 나중에 국가 안보와 직결됩니다. 유사시 선박이 있어야 하는데 해운도 어떤 식으로 역할 부담을 시키든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수렁에 빠졌던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을 구해낸 이연수(사진) 전 외환은행 직무대행. 조선과 해운 등의 수술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이 전 직무대행이다. 그는 눈의 실핏줄이 터지는 순간까지 하이닉스의 회생을 위해 일했고 지금도 채권단이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롤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수술대에 올랐던 두 회사는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출 업체다. 지난 2001년 2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내던 하이닉스는 지난해 5조원대의 이익을 올리는 회사로 탈바꿈했고 현대건설도 연간 1조원의 이익을 기대하는 회사가 됐다.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한 이 전 직무대행은 “내가 무슨 한 일이 있다면서”라며 겸양을 보이면서도 지금의 상황에 대한 해법을 묻는 질문에는 또렷하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 전 직무대행은 “예전(하이닉스·현대건설 구조조정 시기)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면서도 “지금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가 큰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있을 것인데 이를 토대로 주채권은행이 면밀히 검토해 빠르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구조조정의 발걸음이 더디고 정부나 채권단은 혹시나 구조조정이 실패할지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같은 해운사는 법정관리라는 벼랑 끝에 몰려 있고 불황을 몰랐던 조선 3사는 크게 휘청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막연한 두려움부터 떨치고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현대건설만 해도 우리가 그때 출자전환을 1조4,000억원, 신규 지원을 1조5,000억원 했어요. 사실 좀 막막했지요. 이렇게 하면 100% 살아날까 하는 그런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해운이나 조선산업이 진짜 살아날까. 자신이 없을 수 있는데 확신을 갖고 추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도 두려웠어요. 하지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니 살려보자 했던 거예요. 그리고 나서는 살아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추진했습니다.”

방향을 정한 후에는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전 직무대행의 고언이다. 하이닉스와 현대건설 같은 대마를 처리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다만, 기업은 살리되 오너의 책임은 물어야 한다는 게 그의 방침이다.

“현대건설의 경우 청산과 법정관리, 단순 출자전환, 출자전환에 신규 지원까지 네 가지 안을 검토했어요. 현대건설은 하청업체가 1,000개가 넘었고 70억~80억달러에 달하는 해외공사와 국내에 건설 중인 아파트가 많았어요. 그래서 종합판단 결과 이건 살려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대신 오너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닉스도 현대건설과 비슷했다. 이 전 직무대행은 “하이닉스가 첨단산업인데 만약 청산한 다음에 나중에 이런 기업을 하나 만들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전문가에게 물어봤다”며 “당시 전문가들과 교수들이 다시 만들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이런 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하이닉스는 계속 키우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앞으로 우리 산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해운과 조선업도 다시 만들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고 사실상 국가기간산업의 역할을 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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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에는 비계량적인 측면, 정무적이고 경제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해운사업은 사실은 나중에 국가 안보와 관계됩니다. 해운이나 조선은 고용효과도 큽니다. 살리는 쪽으로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떤 방식으로 살릴 건지는 검토를 해야죠.”

이 전 직무대행의 논거는 이어진다. 그는 “조선하고 해운은 법정관리 들어가면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며 “정부가 이런 문제를 검토하긴 했을 텐데 검토해놓은 게 있으면 어떤 식으로 할지 결론을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생각은 과장이 아니다. 부산신항의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인 BNCT의 최고경영자(CEO)이면서 이 분야 전문가인 존 엘리어트는 최근 “만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파산한다면 이런 선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만들 기회조차 없다고 봐야 한다. 한번 없어지면 영영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이닉스 때처럼 당장의 상황만 판단해 칼을 대면 뒷날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르고도 회복이 안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해운동맹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한국선주협회는 두 회사가 법정관리에 가게 되면 연 163억달러(약 1조8,759억원)의 손실과 함께 한국 해운업 자체가 고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의 경우도 후발주자인 중국의 추격으로 치킨게임에 빠져 있지만 향후 경기회복이 됐을 때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꾸준히 보유할 수만 있다면 당분간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방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협조가 필수다. 이 전 직무대행은 “현대건설이나 하이닉스 직원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사안을 다 받아줄 정도로 굉장히 많이 협조했다”며 “현대건설이나 하이닉스나 임금동결이라든가 고통분담을 하겠다는 직원과 노조의 협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조조정에서는 노조의 협조가 필수”라며 “임금 올려달라고 파업하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는 주채권은행의 역할도 수차례 강조했다. 여러 여신기관을 이끄는 주채권은행이 중심을 잡고 방향을 정하면 빠른 속도로 밀어붙어야 기업도 살고 은행도 살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의 부활을 통해 입증된 명제다.

“그때 하이닉스 등에 대해 채권금융사는 모두 부정적이었어요. 하나와 신한, 서울, 한미 같은 시중은행은 참여를 안 했어요. 국책은행이거나 공적자금 지원을 받은 산업은행과 우리, 조흥, 외환, 농협 등 5개 은행이 주가 돼서 처리했습니다. 이들 5개 은행이 구조조정을 성공시킨 것이죠. 회의만 하면 시중은행에서는 참여를 안 하겠다며 반발이 심했어요. 이를 잘 조율하면서 구조조정을 이끌어 내는 게 주채권은행의 역할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 하구요”

실제 이 전 직무대행은 외환은행이 주도한 현대그룹 구조조정을 위해 은행 안에 베스트팀을 꾸리기도 했다. 그는 “현대그룹 구조조정을 위해 외환은행에서 최고 직원 열댓명을 모아 베스트팀을 만들었다”며 “일사분란하게 역할을 분담해 일을 했는데 지금의 은행들도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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