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산은·수은 발가벗을 각오해야"...작심한 정부, 첫 자구안 퇴짜

"자회사 매각 등 겉만 그럴싸...구체적 실행계획 부족"

성과연봉제·임원 연봉 반납 등 고통분담 요구 가능성

"구조조정 집도의 역할...사기 꺾으면 안돼"신중론도





최상목(가운데)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최상목(가운데)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자본확충을 추진하고 있는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고강도 쇄신안을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협의체에 가져온 첫 자구안에 대해 퇴짜를 놓은 것이다. 성과연봉제, 경영진 연봉 일부 자진반납 등이 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이 앞으로 예정돼 있는 만큼 ‘집도의’인 이들 국책은행의 사기를 지나치게 꺾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9일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산은과 수은에 대해 ‘발가벗길 각오로’ 고강도 쇄신안을 요구할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한진해운 부실화의 1차적 책임은 업황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한 회사에 있지만 주채권은행이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부분도 크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4일 열린 ‘국책은행 자본확충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산은과 수은은 대략적인 자구계획을 밝혔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요구하며 퇴짜를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TF의 한 관계자는 “산은과 수은은 자회사 매각을 비롯해 거창한 자구안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부족해 돌려보냈다”며 “국책은행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이 자구안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뜻도 명확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수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 1조원을 현물출자하면서 관철했던 쇄신안을 이번 국책은행 자구안의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당시 기재부는 출자를 요청한 수은에 “자구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제시했고 이후 임금동결 등의 쇄신안을 들고 직접 정부세종청사까지 내려온 수은 고위임원을 “노동조합의 승인을 받아오라”며 돌려보냈다. 결국 경영진이 임금의 5%를 자진 반납하기로 하고 2016년 전 직원 임금동결에 대한 노조의 동의를 얻은 다음에야 겨우 출자가 단행됐다.

관련기사



정부는 산은에 대해서는 최소한 지난해 수은이 제시했던 수준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3급 이상 고위직은 5% 내외에서 임금을 자진 삭감하고 하위 직급은 내년도 임금을 동결하는 안이 거론된다. 지난해 말 자구안을 제출한 수은에 대해서도 성실한 이행방안과 함께 성과연봉제 확대 등 플러스 알파를 요구할 수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산은의 정규직 1인당 평균 보수는 지난해 9,435만원으로 1년 전보다 460만원(5.1%) 올랐다. 지난해 물가상승률(0.7%)의 7배가 넘었고 공무원 임금인상률(3.8%)도 뛰어넘는다. 수은 역시 지난해 1인당 평균 보수가 9,241만8,000원으로 1억원에 육박했다. 이덕훈 수은 행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취임 후 18번의 해외출장을 통해 약 10억원의 경비를 쓴 ‘황제출장’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성과연봉제 도입을 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것이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노조 동의라는 난관이 있지만 수은의 경우 이미 지난해 임금동결 과정에서 노조의 동의를 얻어낸 전례가 있다. 더구나 정부가 산은과 수은의 조직개편을 포함한 경쟁력 강화 방침을 세운 만큼 큰 틀에서 볼 때 성과주의 도입을 밀어붙일 명분도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국책은행들에 고강도 자구 노력을 요구하더라도 구조조정 업무와 관련해 사기를 크게 떨어뜨려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금융권은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부실책임론까지 불거질 수 있는 상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언론사 간담회에서 “산은과 수은에 대해 감사원이 대대적인 감사를 마친 만큼 (산은과 수은은) 부실한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구조조정 ‘집도의’인 국책은행이 몸을 사리게 되면 구조조정 실무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산은과 수은의 부실이 늘어난 데는 관리가 소홀했던 측면 못지않게 시중은행들이 넘긴 물량을 어쩔 수 없이 떠안은 부분도 있다”면서 “정부가 요구하는 국책은행의 자구안에도 이 같은 측면은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하는 와중에도 이들 국책은행은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산은은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수은에 더 많은 자본확충이 이뤄질 테니 자구 강도도 수은이 더 강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수은은 “이미 지난해 수립한 자구계획을 진행 중이므로 강도를 더 높이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조민규·이태규기자 cmk25@sedaily.com

조민규·이태규·구경우·이연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