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격동기 유통산업의 과거와 미래

세 번의 경제위기 때마다 큰 변화<br>저성장 장벽은 어떻게 헤쳐나갈까



국내 유통산업은 복합적인 위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라는 삼각파도가 유통산업의 본질적인 성장 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데다, 모바일쇼핑 등 신(新) 업태의 급성장으로 유통산업 전체가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옥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소비재팀장이 지난 20년간 국내 유통산업의 굵직한 변화 추세를 되짚어보면서 유통의 미래에 대한 단서를 찾아봤다.




한국 유통업은 과거 20년간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선진국형 기업형 유통 형태로 전환했다. 이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현재 우리나라 유통업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개략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유통업의 역사를 구분하고 규정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필자는 지난 20년간 국내외에서 벌어진 세 번의 굵직한 경제위기였던 IMF 외환위기, 신용카드 대란, 그리고 리먼브라더스 사태(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 유통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변화는 늘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가속화되고 기회는 위기 속에서 싹트기 마련인 법이다.

이마트는 2000년대에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룬 대형마트다. 고객이 이마트 매장에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이마트는 2000년대에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룬 대형마트다. 고객이 이마트 매장에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형 유통업의 본격적 성장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유통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는 한국 최대의 경제위기였던 IMF 외환위기 이후라고 판단된다. IMF 외환위기 전에 한국 유통업은 선진국형 기업형 유통업이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40% 전후에 머물렀고, 기업형 유통업태 중에서는 일본식 백화점 정도가 발달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난으로 불렸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행태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합리적인 구매의 확산이었다. 무조건 브랜드 제품을 찾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을 따져보는 선진국형 소비행태가 정착한 것이다.

또 당시에는 경제 재건을 위해 국가적으로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이를 발판으로 현재의 대형마트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케이블TV 시대가 자리잡으면서 1990년대 후반에는 국내에 TV홈쇼핑이 도입됐다. 대형마트와 홈쇼핑은 외환위기 이후 신용카드 대란이 발생하는 2003년 전후까지 매년 수십%의 고성장을 이어갔다. 특히 대형할인점의 양적 성장이 가장 돋보였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신용카드 대란 이후: 선진국형 유통업 정착과 과점화
외환위기 이후 성장세를 보이던 국내 경제와 유통업은 얼마 뒤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2003년 전후의 신용카드 대란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신용소비를 조장한 결과로 발생한 카드 대란 때문에 과열된 내수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런데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위기를 거치면서 체력이 부족한 유통업체들이 도산하면서 오늘날 소위 빅3 유통업체의 입지가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여전히 한국 유통업의 중추 역할을 하던 백화점 업계에서 빅3의 시장점유율은 80%에 육박하는 과점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또 대형 유통업체들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신용카드 위기 이후 기업형 유통업의 확대는 추세적으로 지속됐다.

2003년부터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전인 2008년 전후까지 한국 유통업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지속한 업체는 기업분할 전의 신세계, 즉 현재의 이마트다. 이 시기에는 국내에서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이 지속됐고, 그런 흐름 속에서 토종업체 이마트가 외국계 할인점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또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경제의 활력이 유지되던 시기였을 뿐 아니라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력 소비계층으로 활약하면서 국내 소비시장은 호황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백화점 업계도 신규 출점을 이어가며 성장을 지속했고, TV홈쇼핑도 최초 2개였던 사업자가 2000년대 중반에 5개로 늘어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이 시기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국내에서도 인터넷쇼핑이 고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사라진 삼성몰, 한솔CSN 등 종합쇼핑몰이 초창기 인터넷쇼핑 시장을 주도하다가 새로운 포맷의 옥션이 등장해 시장을 재편하더니 2000년대 후반에는 마켓플레이스 형태의 G마켓이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이 시기의 인터넷쇼핑몰은 PC 기반의 쇼핑몰로서, 현재의 모바일쇼핑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시기에 한국 유통업은 구조적인 성장을 지속하며 10년 만에 기업형 유통업 비중이 60~70% 수준으로 상승하며 선진국 수준인 80%에 근접해가게 됐다.

편의점 CU에서 고객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1~2인 가구 증가와 간편한 소비 확산으로 편의점이 급성장하고 있다.편의점 CU에서 고객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1~2인 가구 증가와 간편한 소비 확산으로 편의점이 급성장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유통업 성장률 둔화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인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거친 2010년 이후 한국 유통업의 가장 큰 변화는 성장률 둔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전의 시기에 한국 기업형 유통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늘 5~10%를 유지하며 경제성장률을 상회했는데, 2010년 이후 국내 유통업 성장률은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며 하향 안정 추세로 가고 있다.


할인점과 백화점 시장은 포화상태에 근접하면서 신규 출점 여력이 급격히 감소했을 뿐 아니라 산업 사이클상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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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할인점, 백화점, TV홈쇼핑 등 거의 모든 유통업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둔화, 인구증가율 정체, 인구고령화에 따른 구매력 저하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처럼 유통산업의 성장 탄력이 급격히 둔화되는 와중에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기업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 이슈마저 불거졌다. 단기간에 기업형 유통업이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희생됐던 중소상인과 소비자의 이익이 주장되기 시작했고, 초과이윤을 누리는 과점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대형마트의 출점 제한 및 영업시간 규제, 백화점과 홈쇼핑의 과도한 수수료와 판촉행사비 전가 문제 등에 대한 규제의 범위와 강도는 광범위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유통업체들의 성장률과 마진은 축소됐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유통업체들의 자구책 중 하나로 해외 시장 진출이 가속화됐다. 그러나 롯데, 신세계를 필두로 한 해외 시장 진출은 불행하게도 현재까지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는 2015년까지 수 차례에 걸쳐 해외 점포를 구조조정했고, 롯데는 여전히 해외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10년 이후 전반적인 유통업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유통업태도 있다. 바로 모바일쇼핑과 편의점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2000년대 고성장하던 PC 기반의 인터넷쇼핑은 빠르게 모바일쇼핑으로 변화하고 있고, 기존 오프라인 유통도 모바일쇼핑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바일쇼핑은 이미 수십조 원의 시장으로 성장했고, 현재 쿠팡이 시장의 신흥 강자로 등장했다.

편의점 시장 역시 2010년대 들어 성장성이 더욱 부각되는 업태다. 이미 GS25와 CU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2015년에는 담배가격 인상의 최대 수혜주로 30% 가까운 매출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모바일쇼핑의 강자 쿠팡은 대구시와 친환경 물류센터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모바일쇼핑의 강자 쿠팡은 대구시와 친환경 물류센터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한국 유통업의 미래: 성장 한계 극복의 빅이슈는 ‘통일’
과거 20년간의 역사와 현재 추이를 감안할 때 미래 한국 유통업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저성장 기조 고착화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성장률 및 인구증가율 둔화로 소비시장의 양적 성장 기반이 약화되고 있고, 인구고령화로 기성세대의 소비여력도 감소하는 추세다.

이런 내수시장의 성장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적인 빅이슈는 ‘통일’이 될 텐데, 아직은 그 시기를 예상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6년 이후에도 모바일쇼핑과 편의점의 상대적인 고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업태는 IT 기술의 발달, 1~2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개인주의 확산 등 사회구조와 소비행태의 변화 추세에 적합한 업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존 대형 유통업체들의 다각화 노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수직계열화를 통한 성장 전략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유통채널 확대를 통한 유통업 본업의 성장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제는 자신들이 파는 물건을 스스로 제조하고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상품과 콘텐츠 제공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유통업체들이 패션업종이나 음식료 제조 및 유통, 물류 사업에 진출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때로는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다각화가 시도되는데, 아직까지 대형 유통업체들은 매년 막대한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고 본업의 투자 소요액은 감소하고 있어 투자 재원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재 한국 유통업체들의 상황은 2000년대 고도 성장기에 비하면 성장 잠재력과 기회가 많이 감소한 상황이다. 모바일 정보혁명과 물류의 발달로 과거의 초과이윤 역시 사라져가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변화된 환경에서 차선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남옥진 팀장은…
1996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장기신용은행 산업분석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유통 담당 선임연구원,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유통 담당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소비재팀장을 맡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남옥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소비재팀장

남옥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소비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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