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직장인 로맨스?

/출처=이미지투데이/출처=이미지투데이




# 지난 3월 한 증권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과장과 여직원이 불륜관계인 것을 확인한 여직원의 남편이 아내의 휴대폰에 등록된 모든 사람에게 불륜 사실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두 사람의 불륜증거인 카카오톡 내용도 함께 전송했다. 사내 게시판을 통해 “불륜으로 인해 청렴결백한 직장 이미지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으니 처벌을 부탁한다”며 아내와 상간남의 해고를 읍소했다.


같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남편이나 부인이 김부장, 이과장, 오대리와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처한 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해 줄 동료에게 심적으로 기우는 건 때때로 자연스럽다. 말로는 전달되지 않는 뉘앙스라는 게 있는 것처럼 복잡미묘한 관계와 각각의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니까. 오피스 와이프, 오피스 허즈번드는 매우 친밀한 동료일 뿐이라고 항변할 법도 하다. 문제는 그 선을 지킨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직장생활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사람이기 때문일까. 정상적인 사내연애를 넘어서 사내불륜을 저지르는 직장인이 꽤 많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오래 붙어 있다 보니 미운 정(精) 고운 정이 쌓이는 건 당연지사지만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불륜 경고등’이 켜지지는 않는다. 선을 지키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 버리는 데는 가정불화, 단순한 싫증, 권태감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유를 하나로 단정짓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 남편, 내 부인에게는 얻지 못하는 무언가를 갈구하기 때문’인 것은 확실하다.


3년 전 시행된 설문조사이기는 하지만 잡코리아가 남녀직장인 654명을 대상으로 ‘오피스 와이프·허즈번드 실태’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응답한 직장인 중 29.7%가 ‘오피스 와이프·허즈번드가 있다’고 답했다. 기혼일 경우 그리고 직급이 높을수록 오피스 스파우즈(spouse)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남의 오피스 스파우즈는 ‘위험하다’거나 ‘지나쳐 보여 불쾌하다’고 답한 반면 나의 오피스 스파우즈는 ‘업무에 도움이 된다’, ‘친구일 뿐’이라고 항변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인식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것이다. 3년이 지났다고 이러한 시선이 달라졌을까.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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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로맨스’를 보는 관점은 ‘불륜’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체적 접촉 유무로 오피스 스파우즈냐 로맨스 또는 불륜이냐를 판가름하는 게 옳은가. 심리적인 요소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논쟁은 오래된 ‘떡밥’이지만 결론을 내는 게 불가능한 부분이다.

불륜 피해자들은 배우자보다 상간(상습 간통) 상대가 더 밉다고 입을 모은다. 이혼소송 대신 상간 상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선택하는 경우가 꽤 있다. 비난의 화살을 ‘잠깐 한눈 판 내 사람’이 아니라 ‘한눈 팔게 만든 요망한 상대방’으로 돌리는 것이다.

결론을 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누군가 ‘그저 사랑일 뿐인데 왜 죄가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사랑은 아닌가요’라고 되물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있다면 애틋한 당신의 감정이 ‘불륜’이라는 굴레를 완전히 비껴가는 건 힘든 일이니까. 아무리 포장을 열심히 해도 알맹이 자체가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행위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니 말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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