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건보료 개편, 뜸만 들일건가

[목요일 아침에] 건보료 개편, 뜸만 들일건가

임웅재 논설위원 겸 노동복지선임기자


서민에게는 고소득자보다 최고 3배, 고액재산가보다 46배가 넘는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제도가 있다.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이를 둘러싼 민원도 연간 수천만건에 이른다. 하지만 수십년간 요지부동이다. 세율 대신 75개 소득등급, 50개 재산등급별 점수에 점수당 금액(올해 179.6원)을 곱해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본모습이 가려져 있는 탓이 크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율은 매우 역진적이다. 소득보험료율의 경우 연간 종합과세소득이 501만원인 서민은 16.2%나 되지만 5억원을 넘는 고소득층은 5%를 밑돈다. 근로소득에 대해 단일 보험료율(올해 6.12%)을 적용 받는 직장가입자와 딴판이다.

지역가입자만 내는 재산보험료율의 역진성은 한술 더 뜬다. 과세표준(부동산은 공시가격의 60~70%, 시세의 50% 안팎)이 100만원 초과~450만원 이하인 서민에게는 4.6~1%, 30억원을 넘는 자산가에게는 0.1% 미만의 보험료율이 적용된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의 최대 쟁점은 지역가입자의 소득·재산보험료를 어떻게 할지다. 보건복지부는 지역가입자의 종합소득에 직장가입자의 근로소득 보험료율(올해 6.12%)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직장가입자의 소득은 유리지갑인 반면 지역가입자의 사업소득은 파악률이 낮은데다 각종 공제를 받기 때문이라는 게 주된 논리다. 하지만 직장가입자는 재산보험료를 안 낸다. 종합소득 파악률이 낮은 것은 피차 매일반이다.


재산건보료는 당장 없애면 건보 재정에 엄청난 타격을 주므로 5,000만원~1억원을 공제해주는 수준에서 당분간 유지하자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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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과체계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득과 재산이 웬만큼 있는 가입자 간에도 보험료가 들쑥날쑥하다. 우리 세제나 사회복지정책에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절벽 내지 문턱 효과 때문이다.

연간 2,000만원 이하의 이자배당 등 금융소득은 종합과세 및 건보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서면 지역·직장가입자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지역가입자라면 금융소득을 합한 종합소득에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야 한다. 지난해 금융소득 3,000만원, 사업소득 4,500만원인 지역가입자 A씨는 오는 11월부터 종합소득 7,500만원에 대해 월 26만5,980원의 소득보험료(보험료율 4.26% 상당)가 부과된다.

A씨가 직장가입자면 ‘종합소득분 건보료’가 월 19만여원으로 줄어든다.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더라도 다른 종합소득과 합쳐 7,200만원을 초과할 때만 ‘근로소득분 보험료율의 2분의1(올해 3.06%)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추가로 내기 때문이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라면 금융소득이 4,000만원 이하일 경우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연금·기타소득 각 4,000만원과 사업소득(미등록사업자) 500만원을 합쳐 총 1억2,500만원의 종합소득이 있어도 그렇다.

이처럼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요지경이다. 정부가 불합리한 종합소득분 건보료 부과기준과 칸막이식 피부양자 탈락 기준을 고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연간 종합소득 4,000만원 또는 3,000만원 초과자부터 지역가입자로 전환시킨 뒤 2,000만원 초과자로 확대하는 쪽이라고 한다. 연간 3,000만~4,000만원이 넘는 공무원·군인, 사학연금을 받지만 직장가입자 자녀에게 기대 건보료를 안 내온 이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연간 100만원의 종합소득만 있어도 소득·재산보험료를 내야 하는 지역가입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특혜일 뿐이다. 금융실명법 등을 고쳐 건보공단이 2,000만원 이하의 금융소득도 다른 종합소득과 합쳐 건보료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법을 고쳐야 하고 반발도 있을 것이므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하겠지만 정책 방향은 이렇게 잡아야 형평성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과세·건보료 사각지대가 매우 넓은 임대소득도 마찬가지다. 뜸만 들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jaelim@sedaily.com

임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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