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아가씨’에는 일본의 귀족 영애 ‘히데코’와 그의 후견인 ‘코우즈키’, 히데코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과 그의 조력자인 좀도둑 ‘숙희’ 등 다채로운 캐릭터가 넷이나 나오고, 하정우·조진웅·김태리·문소리 등 캐릭터보다 더 깊은 느낌의 배우도 여럿 나온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히데코’와 히데코를 연기한 배우 김민희(34·사진)의 매력은 압도적이다. 아이처럼 무구한 얼굴을 띄다가 금세 도도한 귀족의 기품을 뿜어내는 변화무쌍함은 모습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크린 안에서뿐 아니라 바깥의 현실 세계에서도 말이다. “박찬욱 감독님과는 언젠가는 꼭 한번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색이 강하고 느낌도 독특한 영화를 만드시는 데다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찾아내시는 것 같기도 해서요. 하지만 히데코 역을 선택한 이유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좋았기 때문이에요. 히데코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과 감정들을 내가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히데코’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예절 교육 등을 받으며 일본인 특유의 느리고 정갈한 몸가짐을 익혔고 언제 어디서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등 자세 하나 걸음걸이 하나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화려하지만 불편한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것도 곤혹이었다. “작품 속에서 예쁘고 화려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처음에는 굉장히 좋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덥기도 하고 힘들더라구요. 옷이 망가지고 구겨질까 싶어 쉴 때도 여기저기 집게를 꽂았어야 했는데 마치 내가 ‘종이학’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자연스러운 일본어를 구사하기 위해 장시간 연습하기도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 꼬박 3개월 개인교습을 받았고 5개월간 촬영기간 내내 선생님들이 현장에 나와 발음의 톤과 억양을 교정해줬다는 게 배우의 말. “감독님이 워낙 꼼꼼하신 분이라서 배우 모두가 맹렬히 연습했고, 어색한 부분은 나중에 다시 녹음하기도 했어요. 덕분인지 칸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일본인들 가운데 ‘해당 부분은 자막 없이도 영화를 즐기는 데 문제가 없겠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어요. 정말로 보람 있었죠.”
열 일곱 살의 나이에 청소년 드라마로 데뷔했던 김민희는 언제인가부터 작업한 작품마다 ‘완전히 달라졌다’, ‘놀랍다’는 찬사를 받는 여배우가 됐다. 다작을 하는 배우가 아닌지라 ‘화차(2012)’, ‘연애의 목적(2012)’,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등의 작품이 개봉할 때마다 ‘이번 작품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데 배우로선 조금 어색하게 느끼는 것처럼도 보였다.
“연기의 길을 진지하겠다고 생각하고 태도를 바꾼 건 제가 스물 세 살, ‘굿바이 솔로’라는 작품을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벌써 12년이 됐죠. 굉장히 긴 시간이지만 저는 그때부터 한결같은 마음이었어요. 괜찮은 연기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훌륭한 작품을 하는 그 순간들이 다 소중하죠.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그렇게 노력하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 같아요.”
사진제공=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