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금쪽같은 내 새끼'

/출처=이미지투데이/출처=이미지투데이




극성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하나뿐인 금쪽 같은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겠다는 부모들의 정성과 열의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황금인맥을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병리 현상을 낳고 있다. 대출을 받아 최고급 산후조리원에 등록하고 이사를 감행하기 까지 하는 등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동분서주하는 일부 부모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예비 엄마들은 ‘황금인맥’을 이렇게 정의했다.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반듯한 아이들간의 인맥’이라고 말이다.

‘반듯한 아이’의 정의는 일반적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판별하는 법은 매우 달랐다. 우선 가정교육의 질은 경제적 여유와 부모의 직업에 따라 결정됐다. 부모가 고소득 전문직, 고위공무원이어야만 훌륭한 가정교육이 이뤄진다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다.


‘내 새끼’에게 미래의 좋은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예비 부모의 의지는 ‘인맥이면 뭐든 다 된다’는 인식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특히 이런 인맥 쌓기에 대한 부모의 열정은 부를 세습하지 않은 경우 훨씬 더 컸다. 자수성가형 부모의 경우 본인을 끌어 줄 조력자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느껴 왔을 테니 말이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를 다니며 오랫동안 친분을 쌓은 인간적으로도 유대감이 있는 유력자가 있었다면 내가 더 빨리 성공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겠는가.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그런 친구를 더 많이 더 어렸을 때 만나게 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여기게 됐을지도 모른다. 극성 부모라는 타이틀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뿌듯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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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극성 부모의 빗나간 열정은 아이에게 왜곡된 가치관을 형성시킬 가능성이 크다. 부모의 등급 매기기 습성을 그대로 배운다면, 아이는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사람에 손익을 따져 가며 계산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신뢰할 수도 사랑하기도 힘들어 질 것이다. 부모도 예외가 되긴 힘들 것이다. 모든 걸 다 쏟아 부어가며 키운 자식이 부모인 당신을 대할 때는 손익을 따지지 말란 법이 있느냔 말이다. ‘금쪽 같은 내 새끼’에게 버려지는 부모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가장 큰 가르침이 ‘배경을 보고 관계를 맺어라’ 이것뿐이니.

내 아이에게 최상의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다.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게 해주는 것, 스스로 결정하고 해낼 수 있는 힘을 북돋워 주는 교육이 아이에게는 최고가 아닐까. 부모가 주장하는 ‘최고와 최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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