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란 말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기업에는 무언가가 있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54년 간 경영하며 88세 노령에도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것도 여성 최고경영자(CEO)라면 분명 ‘한칼’이 있을 만하다. 주인공은 남궁요숙 알파색채 회장이다.
남궁 회장은 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존재하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은 정정당당하게 돈 벌어서 그에 맞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누구나 미술시간에 한번은 써봤을 ‘포스터칼라’로 유명한 알파색채는 지난 1962년 설립됐으며 2008년 성실납세 의무자로 선정돼 표창장을 받았다.
남궁 대표의 이 같은 기업론은 유년시절 성장환경에서 비롯됐다. 남궁 대표는 항일투쟁 집안 후손이다. 큰 아버지인 남궁혁 선생은 신학자로서 항일투쟁에 몸을 바쳤다. 어릴 때부터 나라 없는 설움을 체득해온 터라 남궁 대표는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국가와의 연결점을 늘 고민했다.
그는 “그때는 독립운동하다가 유치장 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시절”이라며 “집안 사람 모두에 애국심이란 것이 내재돼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남궁 대표는 중매로 만난 남편(전영탁 전 회장)과 결혼 후 약방을 개업하며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에는 보건시스템이 낙후돼 있어서 양약을 보급하기 위해 영어를 좀 하는 사람들에게 약종상 면허를 줬다”며 “원효로 시장입구에서 약을 팔았는데 그때 장사가 워낙 잘돼 사업밑천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다 물감시장에 발을 들여 놓게 됐을까.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법을 고민하던 차에 신문에 사업아이템 공고를 냈다. 자본금은 충분했던 터여서 많은 아이디어가 모집됐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물감사업이 눈에 띄었다.
남궁 대표는 “물감사업을 제시한 사람이 내세웠던 사업 이유가 첫째 학생들을 위한 사업이고 둘째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남편이 특히 이 사업을 꼭 하고자 했다”며 “처음부터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사업의 조건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나라에는 꼭 필요한 것’이었고 여기에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전영탁 전 회장은 연구개발을, 남궁 대표는 마케팅과 영업을 각각 도맡으며 회사는 성장대로를 걸었다. 알파물감 생산 3년 만에 국내시장에서 일본물감을 몰아냈고 1974년에는 한국미술협회가 알파색채를 국내 유일 미술재료 회사로 지정했다. 현재 전 세계 50여개국에 물감수출도 하고 있다.
알파색채라는 사명에서 ‘알파’는 성경에서 말하는 ‘시초’를 의미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남궁 대표가 남편과 고심 끝에 고른 이름이다. 알파색채의 ‘오메가’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나의 목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계의 명화를 알파물감으로 그리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제품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