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객이 점원을 무릎 꿇렸다. 무릎 꿇은 노동자는 ‘내가 도대체 뭘 잘못 했느냐?’고 물을 자유마저 뺏긴다. 질문을 봉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고립당하고 쫓겨날 것을 각오하라는 명령, 이것이 감정 노동자에 대한 심리적·정신적 괴롭힘이다. 희망퇴직을 강요하던 한 기업은 대상자들이 화장실도 못 가게 막았다. 작업장 안에 화장실이 없거나 교대와 휴게 시간이 너무 짧아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것은 회장님의 폭행이나 서류로 때리는 것 못지않은 신체적·물리적 괴롭힘이다. 이른바 ‘성과관리프로그램’을 경영전략으로 채택한 회사 중 일부는 외형상 역량 강화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직원을 들볶아 제 발로 나가게 만드는 ‘상시 퇴출 프로그램’으로 악용한다. 1단계는 저성과자들을 선별해 낙인 찍고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떠나게 하는 것, 2단계는 각종 수당을 깎아 도저히 먹고살 수 없어 나가게 하는 것, 3단계는 영업을 할 수도 성과를 낼 수도 없는 자리에 배치해 무의미한 일을 지시하는 것이다. 조직적 괴롭힘이다.
‘직장 내 왕따’ ‘가학적 인사관리’ ‘권력형 괴롭힘’ 등으로 불리는 이 사회문제의 이름부터 다시 짓자. 인권운동가와 변호사로 이뤄진 책의 저자들은 이를 ‘일터괴롭힘’이라 명명했다. ‘일터’는 공장과 사무실뿐 아니라 통근·출장·회식·훈련 시간과 전화대화 및 스마트폰 등의 기기를 통한 문자 대화도 포함한다. 노동환경의 변화로 단기 노동자, 시급 알바, 취업준비생, 인턴 실습생 등이 일터에서 강압과 모욕을 겪는다는 것도 ‘직장’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괴롭힘(harassment)’은 ‘노동자의 존엄성과 인격을 모독하고 권리를 위협하는 일체의 태도·행위’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다. ‘일터괴롭힘’은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는 고통이지만 평소에는 ‘굵직한’ 노동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여겨진다. 일터괴롭힘의 핵심에는 노동자의 자율성이 파묻혀 있고, 따라서 이 문제는 인간 존엄성 존중에 관한 심각한 사안이다. 책은 개념 정의를 먼저 한 다음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일터괴롭힘을 유형별로 파악하고 그 피해의 영향을 분석, 대응 방안까지 제시한다.
일터괴롭힘을 ‘당하는 내가 불편하고 싫은 것’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공통된 권리에 따른 존중을 받았느냐 침해당했느냐 여부로 판정된다”며 “어떤 노동자가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으면 그 개별 노동자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같은 일터, 같은 부문 종사자 모두에게 공통된 ‘괴롭힘당하지 않을 권리’라는 범주로 적용된다”고 말한다. 권리를 지키는 것도 책임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곧 나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괴롭힘은 피해자뿐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감각에 타격을 가하고, 이는 사회적 망의 붕괴까지 위협한다.
프랑스는 ‘정신적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일터괴롭힘을 법률로 규제하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일본에는 권력적 괴롭힘이라는 뜻의 ‘파와하리(power harassment)’가 통용된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일터에서의 폭력’을 보고서로 내놓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관련 규제가 아직 없다. 책은 일터괴롭힘을 처벌할 입법 필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노동법과 국제기구의 정의, 해외 사례 등을 통해 대응방안을 안내한다. 피해의 기록, 증거확보, 노조 상담, 소송과 고소 등 구체적 대처법을 설명하면서 그러나 SNS를 통한 폭로는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