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5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돌발 쟁점으로 부각됐다. 공식의제에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대표는 5일 주제연설을 통해 주한미군의 한국 사드 배치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한국과 미국을 압박했다. 중국·러시아의 사드 반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미국이 최근 북한을 자금세탁우려국으로 지정한데다 중국 화웨이의 대북수출 내역을 압박하는 등 미국·중국 갈등이 커지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것이어서 중국 등이 한국을 놓고 ‘누구와 손을 잡겠느냐’는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쑨젠궈 중국 인민해방군 부참모장은 “사드 배치는 지역의 안정을 잠식할 것”이라며 미국의 한국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확고한 반대 입장은 그가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따로 질문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사드 반대’ 목소리를 높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북한 비핵화 설득 노력’에 대한 질문에 답하다 갑자기 “사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안다”면서 “사드의 한반도 전개는 그들이 필요한 방어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필요 이상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쑨 부참모장은 전날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여기에 러시아도 가세했다. 러시아의 아나톨리 안토노프 국방차관도 주제연설에서 사드를 겨냥한 듯 “한국과 미국 간 미사일 방어협력이 전략적인 안정을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한미가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추진하자 불거졌던 한국·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갈등이 세계 35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대규모 국제회의인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더욱 부각되는 양상이다.
사드 갈등은 6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제대화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사드로 중국과의 마찰이 부각되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주력했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장관은 중국과의 회담에서 중국 측이 먼저 사드 문제를 거론하자 “중국이 사드를 너무 과대평가해서 본다”며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로 필요하면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설명해줄 수 있다”고 즉각 응수했다. /박경훈 soco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