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문화돋보기]이우환 위작논란, 깜깜이 감정에 나까마 화랑…감정·유통구조 확 바꿔야

끊이지 않는 위작 논란…이번엔 근절책 나올까

佛·美선 공인감정사 제도 운영

경매회사 자체검증 시스템으로

미술품 거래시장 공신력 높여

한국은 감정 전문인력 부족하고

소장정보 등 데이터베이스 부실

서울·K옥션도 자구책 마련 필요

위조된 감정서가 첨부된 채 이우환의 작품으로 출품돼 지난해 말 경매에서 5억원에 낙찰된 ‘점으로부터’ /사진제공=K옥션위조된 감정서가 첨부된 채 이우환의 작품으로 출품돼 지난해 말 경매에서 5억원에 낙찰된 ‘점으로부터’ /사진제공=K옥션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이우환의 위작을 만들어 판매한 혐의로 화랑 운영자가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의해 구속기소된 화랑운영자 현 모씨는 ‘점으로부터’ 등 이 화백 작품 3점을 위조해 팔아 13억2,5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골동품상에게서 일본산 캔버스 등을 구입해 알고 지내던 서양화가와 함께 그림을 위조한 현씨에게는 사서명위조, 위조사서명행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 등이 적용됐다. 이미 3~4년 전부터 떠돌던 ‘이우환 위작 유통설’이 과연 이번에 마무리될 수 있을까?


이우환 위작 논란의 쟁점은 크게 △감정과 △유통의 문제로 나뉜다.

◇문제투성이인 ‘깜깜이 감정’= 미술품 감정은 진위 여부 및 가치를 평가하는 전문적 과정이다. 감정단은 도상학과 재료학 등 고도의 숙련된 지식과 경험을 갖춘 미술사학자, 평론가와 더불어 화랑관계자들로 꾸려진다. 상업화랑의 운영자가 감정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구에서는 풍부한 작품 거래 경험과 신뢰를 목숨처럼 여기는 시장 풍토 때문에 화랑관계자에 대한 감정의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문화강국 프랑스는 정부가 인증한 감정사 자격이 있고 미국도 공인감정사 제도가 있다. 일본은 작가별로 세분화 된 전문 감정사가 공신력을 갖고, 소더비 등 대형 경매회사는 자체 감정기구를 운영한다. 우리는 감정 역량을 갖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감정과정은 비공개다. 작품 감정의 기준이 되는 데이터베이스인 전작도록(카달로그 레조네)이 확보되지 않았고, 작품 소장 이력에 대한 정보도 부실하다.

‘이우환 위작’의 경우 감정단이 거듭 ‘위작’이라 했음에도 작가가 “위작이 아니다”는 엇갈린 주장을 내놓은 탓에 감정평가원이 ‘감정불가’를 선언하며 감정서 발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위조된 감정서를 첨부한 이우환의 위작이 K옥션에서 5억원에 낙찰됐다. 이처럼 생존작가의 경우 작가의 주장과 감정단의 판단이 엇갈릴 경우 진위판단은 미궁으로 빠진다. 서구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관여·언급하는 경우는 적지만 이는 학계와 시장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논란이 뜨거운 작품은 결국 과학감정을 위해 국과수로 넘어간다. 박수근·이중섭이 그랬고 천경자와 이우환도 마찬가지다. 도상과 붓질을 넘어 물감,캔버스 등의 성분을 분석하는 과학감정이지만 계획적 위조범이 철저하게 재료를 확보했을 경우 등을 감안하면 ‘절대진리’로 신봉할 수 없다.

◇‘나까마 화랑’의 횡행= 유통의 문제는 이번에 구속 기소된 현 모씨의 경우처럼 공개 전시 없이 그림만 사고파는 미술품 2차 거래처, 일명 ‘나까마 화랑’의 횡행이 문제다. 일반적으로 화랑은 작가에게 직접 작품을 받아 거래하는 1차 시장이며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는 역할을 겸한다. 하지만 ‘나까마 화랑’은 고객의 의뢰를 받아 해당 작품 소장자를 찾아가 그림을 구해오는 식으로 작품 출처가 불분명하다. 이들 상당수는 한국화랑협회 회원사로 등록되지 않은 곳들이다. 지나치게 싸게 구입한 명품은 ’짝퉁’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점은 구매자도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미술 유통의 큰 축을 잡고 있는 경매회사의 경우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세계적 경매사는 자체 검증 시스템이 확고하지만 국내 경매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이우환 위작을 경매에 올린 K옥션이나 박수근의 ‘빨래터’로 법정공방에 휘말린 서울옥션 등 경매회사도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이 고(故) 천경자 화백의 작품으로 소장하고 있으나 작가는 생전에 “내 그림이 아니다. 제 자식 몰라보는 부모가 어딨느냐”고 주장했던 ‘미인도’는 최근 유족의 고소·고발 사건을 계기로 25년 만에 미술관 수장고에서 나와 8일 검찰로 넘어갔다.

이 같은 미술품 위작의 최근 현안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품 유통업 인허가제 △미술품 등록 및 거래 이력제 △미술품 공인 감정제의 도입 △위작 단속반 운영 등을 골자로 한 법제 마련을 검토키로 하고 9일 종로구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위작 유통범에 의해 작품을 위조 당한 이우환 화백 /서울경제DB위작 유통범에 의해 작품을 위조 당한 이우환 화백 /서울경제DB


[이우환 위작유통 사건일지]


△2012년 인사동 화랑가 ‘이우환 위작 유통설’ 퍼져

관련기사



△2013년 이우환 복수의 인터뷰 “내 그림은 위조 못한다”

△2014년 감정단 ‘위작’ 판명 늘어 이우환 작가와 갈등

△2015년 10월 경찰 인사동 위작유통 화랑 압수수색

△2016년 1월 K옥션 낙찰작 첨부 감정서 위조로 판명

△2016년 4월 이우환 위작 의혹 관련 변호사 선임

△2016년 6월 위작 유통범 구속기소

△6월28일 이우환 위작 확인차 귀국 예정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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