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1963 발칙한 혁명> 비틀스 듣고 피임약 먹고…1963, 문화반란의 시대

■ 로빈 모건·아리엘 리브 지음, 예문사 펴냄





“1963년 1월 13일 영국의 버밍엄, 젊고 매력적인 보이 밴드가 영국 공영 방송에 첫선을 보였다. 그들은 ‘플리즈 플리즈 미’라는 활기 넘치는 선율의 노래를 부르며 시청자들을 매혹시켰다.…같은 날 밤, BBC에서는 무명의 미국 음악가가 덥수룩한 머리를 휘날리며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in the wind)’으로 공중파 데뷔를 했다.”

우연의 일치로 1963년 같은 날 영국 공영방송에 데뷔한 비틀스와 밥 딜런이었다. 이들의 등장이 1년 뒤 유럽과 미대륙에 자리잡고 있던 구체제와 계급, 기존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신호탄이었음을 당시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1963년은 ‘혁명’같은 대중문화의 전환기였다. 그 ‘발칙한 혁명’은 음악에서 시작돼 애릭 클랩튼, 데이비드 보위, 엘튼 존 같은 가수들이 기타를 퉁기고 건반을 두드렸다.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퀀트는 치맛단을 한 뼘이나 잘라내 미니스커트를 창시했고, 헤어 디자이너 비달 사순은 건축학적 원리를 적용한 머리모양을 선보였다. 앤디 워홀과 데이비드 호크니는 학교에서 배운 예술수업을 뛰어넘은 실험적 작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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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전문지 ‘보그’의 다이애나 브릴랜드 편집장은 이 1963년을 ‘젊은이 반란의 해’로 이름 붙였다. 이 책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계 인사 48명의 인터뷰를 통해 창조적 영감이 폭발하던 1963년의 개인과 사회, 국제사회의 모습을 대화체 형식으로 생생하게 증언한다.

반란에 가까운 이 1963년 혁명을 이끈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청소년기를 보낸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 젊은이는 전쟁의 종식으로 징병의 불안에서 벗어났고, 피임약의 보급으로 임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와 사랑을 만끽했다. 정치·사회·경제적 여건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꿈과 욕망의 실현이 대중문화의 발달로 이어졌고, 영화와 출판 분야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던 ‘검열’이 떨어져 나갔다. 1만9,8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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