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血稅를 두려워하라

황원갑 역사소설가

호화청사에 새 보도블록 교체 등

혈세낭비는 '국민에 대한 배신'

'가렴주구' 계속되면 민심 등돌려





1,809억원이 드는 서울 동작구청 신청사가 오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건축될 예정이다. 동작구청 전에는 지난 2008년 금천구청이 1,152억원을, 2010년에는 용산구청이 1,522억원을 들여 구청 건물을 새로 지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평균 재정자립도 31.5% 이하인 21.6%에 불과한 관악구청도 2007년 873억원을 들여 새 청사를 지었다. 서울시도 2012년 2,989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새 청사를 지었다.


새 청사가 필요하다고 해도 검소하게 짓고 나머지 예산으로는 복지확충이나 생산적인 여러 사업에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공건물을 신축할 때는 먼저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처럼 앞을 다투듯이 호화청사를 지어야 할 때인가. 기가 막힐 일이다.

몇 해 전 전남 목포시는 멀쩡한 가로수의 일부를 잘라내 조각을 하고 색칠을 했다가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아예 밑동까지 베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였다. 목포시는 높이 5m 이상 되는 30년생 가로수 30그루를 3m가량씩 잘라내 시를 상징하는 마크와 홍어· 조기 등 지역특산물, 국화 등 다양한 종류의 조각을 한 뒤 빨갛고 노란 색칠을 했다. 도시미관을 살린다는 구실이었다. 이런 상식 이하의 행정에 시민들의 항의전화와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무더기로 쏟아지자 목포시는 조각 가로수들을 몽땅 베어버렸던 것이다. 멀쩡한 가로수를 두 번 죽인 잔인한 처사였다.


공무원들이 고달픈 서민의 설움과 아픔을 한 가지라도 덜어주기는커녕 어떻게 해서 이처럼 터무니없는 발상을 하게 됐을까. 공무원들의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 상식 이하의 세금 낭비가 어디 이들의 경우뿐일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곳곳에서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버리고 새것으로 깔아 귀중한 혈세를 낭비한 사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니 철밥통이니 탁상행정이니 하는 말도 모자라 이제 엽기행정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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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중의 상식이라 새삼 강조하기도 싫지만 공무원이란 국민의 공복(公僕)이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동·면서기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혈세로 봉급을 받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멸사봉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공직자들은 모름지기 혈세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호화청사는 말할 나위도 없고 가로수 한 그루, 보도블록 하나도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로 마련한 것이다.

공무원의 혈세 낭비는 주인인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요 나아가 국부(國富)의 도둑질과 다름없다. 혈세 낭비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다.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말도 있다. 가렴주구란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하고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짓을 가리키니 이는 곧 학정(虐政)과 다름없다. 정부가 세금 쥐어짜기에 혈안이 되다시피 하니 가렴주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혈세란 국민이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고 낸 세금이다. 혈세를 낭비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면 과중한 세금부담을 줄이고 낭비요소를 없애며, 작은 정부를 지향해 씀씀이를 대폭 줄여야 한다. 국민의 동의도 받지 않고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국책사업이나 대북지원에 혈세를 낭비한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정부 부처와 업무가 중복되는 위원회도 대폭 정비해야 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공무원 수도 다시 줄여야 한다. 주먹구구식 전략증강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무작정 퍼부어서도 안 되고 천문학적 액수의 방위사업 비리도 시급히 근절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변해야 한다.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펑펑 쓰지 못할 것이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궁민(窮民)-빈민(貧民)이 되고 빈민이 추락하면 원민(怨民)이 된다. 국민을 한 많은 빈민·원민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렴주구로 정권이 바뀐 경우가 많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황원갑 역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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