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상> 오도가도 못하는 '하청의 굴레' 속에 갇힌 청년들

[기획] 사회 ‘밑단’ 하청 청년의 짙은 한숨소리

스크린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생을 달리한 김모(19)씨를 추모하는 쪽지들이 붙어있는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연합뉴스스크린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생을 달리한 김모(19)씨를 추모하는 쪽지들이 붙어있는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연합뉴스


최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모군은 위험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들의 자화상을 대변한다.

지난해 8월 강남역, 올해 3월 대기업 제3하청 업체인 인천 남동구 소재 핸드폰 부품 가공업체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희생자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에 근무하던 청년이었다.


▲ 최저임금도 못받는 비정규직 청년들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 꿈을 잃어버린 삶보다 더 하청 청년을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당장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일정 생활을 영위하기에도 임금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청년 열정페이의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비정규직 청년의 시간당 임금(2015년 8월 기준)은 4,515원으로 정규직 청년의 1만741원의 42% 수준에 불과했고, 시간당 최저임금 6,03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를 월평균 임금으로 추산하면 비정규직 청년은 월 71만원의 임금을 받아 정규직 청년(185만원)의 38.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사 회계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여림(20·가명)씨는 “전문 자격증도 따고 들어왔지만 여기서는 매일 정규직의 잔심부름만 하는 것 같다”며 “처음엔 열악한 환경이라도 경력을 쌓고 뭐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턱없이 모자라는 임금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산업재해를 입은 하청 근로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희생도 끊이지 않고 있다.‘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산업재해를 입은 하청 근로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희생도 끊이지 않고 있다.


모 건설 업체의 1차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종명(27·가명)씨는 “1차 하청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라며 “2,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은 나보다 3~4시간을 더 일해도 받는 돈이 적은 수준이라 투잡, 쓰리잡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저임금의 굴레 속에서 산업재해로 하청 청년은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평택의 한 화학업체에 갓 입사한 20대 청년은 공장배관 설비를 보수하던 중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4년 실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에 의하면 절반 이상의 하청노동자들이 공기 단축을 이유로 안전보건조치 없이 작업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있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 겸 노무사는 “기술이 하나의 ‘스펙’처럼 자리 잡은 제조업이나 건설업의 특성상 저임금·장기노동은 하청 청년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는 제도적인 정비나 꾸준한 직업교육을 통해 일자리 사다리 기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 반복될 ‘악의 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꿈’보다 당장의 ‘내일’ 걱정에 한숨짓는 하청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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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올 3월 경기도 용인의 한 중소 제조업체에 취직한 정여울(20, 가명)씨. 그의 꿈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생산 라인의 팀장이 되는 것이다. 그는 “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공한 고졸’, ‘대졸보다 나은 연봉을 받는 고졸 신화’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며 “당장 ‘내일’을 살 수 있는 돈을 벌려면 대학에 진학해서 더 나은 삶을 사는 꿈보다 취직이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 조립라인에서 근무하는 최동진(28, 가명)씨는 “어려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찍 이혼을 해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이 됐다”며 “빨리 일을 시작해 돈을 버는 것이 급선무였고 꿈을 크게 꿔봤자 나만 괴로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의 한 특성화고 A교장은 “특성화고를 진학하는 학생들 중 반 이상이 결손 가정”이라며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자는 학생들이 있어 이유를 물어보면 밤늦게까지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해 비정규노동센터가 펴낸 ‘비정규 청년 현황 고용 실태’에 따르면 현재의 일자리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냐고 묻는 질문에 비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답한 비율이 52.3%에 달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택한 이유로는 ‘정규직 자리를 찾기 쉽지 않아서’가 40.8%로 가장 많았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적 사정 때문에’가 32.9%를 기록해 뒤를 이었다. 가정환경과 일자리 수급 상황 등 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청년층이 ‘하청 청년’으로 만들어지는 데 큰 결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교육당국의 취업률 지상주의도 문제

청년들이 사회 밑단에서 위험한 노동을 강요 받는 지금의 상황은 교육 당국의 ‘나몰라라’식의 태도도 일조하고 있다. 특히, 하청청년을 양산하는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는 취업률이 학교 평가의 절대적인 잣대로 작용하면서 일부 학교의 경우 학생들을 근무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보내더라도 일정 취업률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진로 상담을 계속하고 있다.

경기도 한 공업 계열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성종(23·가명)씨는 “학교에서 추천한 곳에서 현장실습을 마치고 취직했다”며 “아직 취직을 하지 않은 실습 때부터 학교 측에서 재직증명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목포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다솔(24·가명)씨는 “처음 학교에서 소개 시켜줘 취직한 직장에서 노련한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며 “막상 취직을 하고 나니 1년이 되기 전에 사직을 하라고 압박을 줬고, 학교 측에 하소연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하인호 교사는 “특성화 고등학교는 예산이 취업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특히 교장이나 교감과 같은 학교 임원들의 성과급 평가 기준에 취업률이 큰 요인이 되기 때문에 현장 실습 후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업들이 학교보다 갑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호기자 정수현기자 김인경인턴기자phillies@sedaily.com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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