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기성정치에 환멸...포퓰리즘, 伊 정치권 뒤흔들다

리라화 복귀·긴축 반대 앞세운 '오성운동' 지방선거서 돌풍

라지 등 당소속 여성후보 2명 로마·토리노 시장에 당선

집권 민주당은 심각한 타격...렌치 총리 정치생명 벼랑끝에



‘트럼프 현상’으로 대표되는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이에 따른 극단적 포퓰리즘 추종이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의 지방선거마저 휩쓸었다. 정치풍자로 인기를 끈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만든 정당 ‘오성운동(M5S)’이 로마시장을 거머쥐면서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으로 부상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오성운동은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 두 30대 여성 후보를 앞세워 로마·토리노 등 주요 도시 4곳 중 2곳의 시장직을 차지하며 약진했다. 오성운동은 지난 2009년 당수인 그릴로가 ‘정직(onesta)’을 내걸고 좌파와 우파라는 기존 정당체계를 부정하며 만든 정당이다. 오성은 물, 교통, 개발, 인터넷 접근성, 환경 등 정당의 다섯 가지 주관심사를 뜻한다.





이 정당은 창당 이후 리라화로의 복귀,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 긴축정책 반대 등을 주장하며 일각에서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EU 주도의 긴축정책과 기존 정당의 부패에 지친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높은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그릴로가 2선으로 물러나고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하원 부대표 등 신진세력이 전면에 나서 중도층 표까지 흡수했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로마시장 선거에서 오성운동이 내세운 37세의 여성 변호사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가 67.2%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이탈리아 정치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기원전 8세기에 형성된 유서 깊은 도시 로마에서 여성 수장을 맞은 것은 2,500년 만에 처음이다. 라지 후보는 당선자 연설에서 “근본적이고 역사적인 승리”라며 “우리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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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공업도시 토리노에서 오성운동 소속 31세 여성 기업인 키아라 아펜디노 후보가 현직 시장을 꺾고 당선된 것도 이번 선거의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이로써 두 신임 시장은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시장, 마누엘라 카르메나 스페인 마드리드 시장,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 헨리에테 레커 독일 쾰른 시장 등에 이어 유럽 주요 도시의 여성 시장 대열에 합류했다.

오성운동의 부상으로 마테오 렌치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이번 선거가 상원 권한 축소, 내각 임기 5년 보장 등을 담은 개헌안의 찬반을 묻는 10월 국민투표의 ‘전초전’으로 불렸던 만큼 국민투표 패배시 사임을 내걸었던 렌치 총리의 정치생명은 벼랑 끝에 몰렸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도 주요 도시에서 시장직을 하나도 건지지 못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아울러 23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국민투표, 26일 스페인 총선을 앞둔 유럽 내 반EU 정서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지난 9일 CIS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이번 스페인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 ‘우니도스포데모스’는 25.6% 지지를 받아 제2당 등극이 유력하다. 오성정당에 이어 우니도스포데모스까지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남유럽에 불고 있는 반긴축·반EU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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