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저녁이 있는 삶 Vs 삶이 있는 저녁

정민정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정민정정민정


1997년생 245명의 참담한 죽음으로 대한민국이 뜨거운 눈물을 흘린 지 꼭 771일 만인 지난 5월 28일, 또 한 명의 97년생 꽃 같은 청춘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공구가방 속에 남겨진, 미처 뜯지 못한 컵라면과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통해 우리는 비정규직 청년의 힘겨웠던 노동의 일상과 한국의 산업 현장을 맞닥뜨리게 됐다.

대한민국처럼 사회 안전망과 노동복지 시스템이 열악한 사회에서는 성장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그 책임을 먹이사슬 밑단에 자리한 노동자,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이 떠안게 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해양 협력업체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인근 양파밭에서 일당을 뛰거나, 분식회계로 공분을 산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맥없이 정리해고를 당할 정도로 위기의 파장은 노동 지위가 열악한 이들에게 가장 크게 미치기 마련이다. 화이트칼라의 삶과 블루칼라의 그것이 천양지차이고, 수저의 색깔과 학력에 따라 인생의 등급이 매겨지는 현실에서 육체 노동으로 원하는 삶을 꾸린다는 것 자체가 환상으로 치부되는 이유다.

컵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월급(144만원)에서 100만원을 저축해 대학에 진학하려 했던 김군은 성장하는 내내 “대학은 나와야 사람 대접 받는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이 400만원 넘는 월급을 챙겨가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인간답게 살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당장 이달 생활비와 대학 등록금이 절실했고 오늘만 버티면 내일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정은 어떨까.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가 거의 없고, 보일러공이 공무원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면, 김군은 아마도 대학을 가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날 무리해서 작업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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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경제학자로 잘 알려진 이정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한국이 살기 힘든 이유 중 하나로 ‘노동의 열위’를 꼽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임금의 정체, 비정규직의 급증, 노동조합의 약화, 자본수익률과 이윤의 고공행진 등으로 노동의 지위가 점점 추락했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취업자 중 노동자 비율이 약 70~80%에 이르지만, 노동의 지위가 점차 추락하면서 시민들의 삶은 해를 거듭할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유력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 대중적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숨가쁜 노동자에게는 ‘삶이 있는 저녁’이 더욱 귀하고 값질 것이다. 공구를 들고 일하든, 노트북으로 일하든 그들의 저녁이 똑같이 고귀하게 대접받을 수 있기를, ‘삶이 있는 저녁’이 이 땅의 모든 이에게 ‘기회’가 아닌 ‘당연한 권리’일 수 있기를, 그래서 제2·제3의 김군이 이 땅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 jminj@sedaily.com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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