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자포스 본사의 수요일 오후. 그러나 그날은 다른 미국 회사에서 맞는 수요일 오후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자포스 콜센터 직원 출신인 회사 내 ‘입주 예술가’가 출입구 근처에 캔버스를 세워 놓고 국화를 그리고 있었다. 한때 라스베이거스 시 청사였던 70년대 풍의 반원형 건물 로비에는 음력 설을 맞아 중국식 붉은 등도 걸려 있었다. 몇 시간 후, 1,500명 직원 전원이 회사 근처 MGM 그랜드 극장(태양의 서커스 카Ka 쇼가 열리는 곳)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분기별로 열리는 올핸즈 미팅 All-Hands Meeting 행사에서 음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직원들의 인종은 다양했고 평균 연령도 낮았다. 형광색 머리카락과 코 피어싱 등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장기 집권 중인 CEO 토니 셰이 Tony Hsieh가 윤년 기념으로 2월 29일 전원 유급휴가를 선언하자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회사에 대한 랩을 열창한 한 배송담당 직원에겐 기립박수를, 회사를 떠나는 장기근속 ‘자포스인(Zapponian)’에겐 힘찬 작별 인사를 보냈다. 그들은 자포스의 상징인 상자가 카메로로 출연한 태양의 서커스의 깜짝 공연도 관람했다.
서커스, 심리치료, 부흥집회를 합쳐 놓은 듯한 이 별난 행사를 지켜보면, 자포스에서 일하는 게 왜 특별한지를 알 수 있다. 자포스는 각자의 개성을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거의 집착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이다. 무료 건강보험 등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혜택도 제공한다. 직원을 중심에 두다 보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실적평가 척도를 거의 사용하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자포스(2009년 아마존에 인수됐다)는 포춘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리스트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자포스는 ‘즐거움과 약간의 이상함을 창조하라’, ‘소통으로 개방적이고 정직한 관계를 만들어라’ 같은 자사의 10대 핵심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타 기업이 자포스 방식을 도입하도록 지원하는 자문 팀까지 운영하고있다.
그러나 수직적 질서와 상급자가 존재하는 전통적인 조직구조에서 ‘자기경영(self-management)’을 추구하는 ‘홀러크라시 holacracy’*로 전환한지 3주년이 되는 올해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랩 공연과 동물 입양을 장려하는 폴리데이 Pawlidayz 운동 실적보고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42세의 CEO 셰이가 단상에서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포춘의 ‘일하기 좋은 기업’ 선정 설문조사의 58개 문항 가운데 48개에서 점수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자포스는 8년 만에 처음으로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경영진이 조직의 목표와 그 달성 방식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와 경영진이 ‘편애하지 않으려 노력하는가’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이 특히 부정적이었다.
*홀러크라시: 영국의 철학자 겸 작가 아서 케슬러가 1967년 저서에서 소개한 신조어. ‘자율적이면서도 자급자족적인 결합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셰이는 그다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최근 몇 달간 그는 홀러크라시를 넘어 더욱 추상적인 ‘청록색(teal)’ 시스템으로 쏠리고 있었다(이에 대한 설명은 후에 하겠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건 큰 여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지금 마음 속에 떠오르는 장애물이 무엇이든지 결국 극복을 해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장애물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홀러크라시로의 이행은 사업전략 재설계는 물론, 슈퍼 클라우드 Super Cloud 같은 야심 찬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와도 동시에 진행됐다. 직원들은 계속되는 변화에 당황했고, 혼란과 사기저하에 빠졌다. 사측의 퇴사 제안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에만 29%의 직원이 이직을 했다.
지난해 자포스를 떠난 한 전직 직원은 홀러크라시가 “카오스와 불확실성을 낳은 사회적 실험”이었다고 말했다. 올핸즈 미팅이 끝난 후 설문에 응한 한 현직 직원-자포스가 포춘에 연결해주었다-은 셰이가 부정적인 피드백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점을 높이 사면서도 좌절감을 토로했다. “경영진과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고, 편애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경영 관련 문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런 문제들은 홀러크라시 도입 이후에도 계속 남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과거에서 출발해 현 제도 하에서 더욱 심각해진 문제들이다.”
자포스는 늘 리스크를 감수하는 기업이었다. 1999년 하나의 실험(인터넷 신발 판매)으로 시작해, 셰이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에 따라 틀을 깨는 변화를 잇달아 시도해왔다. 자포스는 인터넷 쇼핑몰 최초로 무료배송·무료반품 서비스를 제공했다. 본사를 라스베이거스 교외로 이전해 실리콘밸리와 차별화된 문화를 추구했고, 이후 시내 중심가의 낙후 지역으로 이전해 일과 삶의 천국을 건설하려 했다.
팀을 ‘서클’로 관리자를 ‘중심 링크(lead link)’로 대체하는 등 셰이는 홀러크라시 도입을 통해 대기업 대부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죽음을 피하고자 했다. 그는 “나는 자기경영이 미래의 열쇠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핵심인 회사 문화와 교조적인 규정 간에 운명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홀러크라시는 일부에겐 힘이 됐지만, 다른 이들에겐 제약이었다. 내부정치 근절 같은 회사의 가장 유토피아적인 목표 몇 가지는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자포스에 남은 직원들은 그 동안의 변화가 힘들긴 했어도 이젠 고지를 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회사의 비전에 확신이 없지만, 그래도 회사를 신뢰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유행했던 표현처럼, 셰이가 ’마을을 구하기 위해 마을을 불태우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간혹은 있는 듯하다.
토니 셰이는 일의 인간적인 측면에 늘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저서 ‘행복 배달하기(Delivering Happiness)’에서 직원의 업무 만족이 사업 성공의 열쇠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자포스는 직원 만족도가 높았지만 성장세는 주춤했다. 어떤 경영진도 회사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것만큼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셰이는 자포스에 관료주의 문화가 들어와 특유의 정신을 잃을까 걱정을 했다.
2012년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린 ‘깨어 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 콘퍼런스에서 셰이는 브라이언 로버트슨 Brian Robertson이라는 소프트웨어 업체 CEO의 연설을 들었다. 로버트슨은 감정적 불일치와 권력투쟁 등 인간 상호작용의 본질적 혼란이 기업의 잠재력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상급자나 사내정치, 권력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기업 조직 방식은 없는지 스스로 자문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로버트슨은 퀘이커 교 집회소 내 의사결정 제도를 바탕으로 지난 세기에 발명된 조직구조인 소시오크라시 sociocracy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상사 없는 조직을 위한 ‘운영체제(로버트슨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로서 규약집을 발간했다.
그 결과물이 홀러크라시다. 수직적인 보고체계는 조직원들이 서로 밀접하게 모여 일하는 서클이 대체하고, 각 직원은 ‘직무’가 아닌 ‘역할’ 을 맡는다. 중심 링크가 명목상의 관리자지만, 공식적인 권위는 그리 크지 않으며, 나머지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할 수도 없다.
이 모든 평등주의는 특히 이행기에 많은 회의와 맹비난을 불러왔다. 홀러크라시에는 업무의 진행을 위한 ‘전략 회의’와 각종 절차 및 방해요인을 논의하는 ‘관리 회의’가 있다. 로버트슨은 한 인터뷰에서 “홀러크라시는 체계, 경직성, 규율을 강화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않는 이상 규율은 스스로 해야 한다.”
셰이는 로버트슨-그의 회사는 열성적인 홀러크라시 옹호자들을 대상으로 글래스프로그 GlassFrog라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에게 연락을 취했고, 결국 그 대열에 동참했다. 2013년 초 사내 최초로 자포스 인사 부서가 홀러크라시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다양한 권한, 끝없는 회의, 누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에 충격을 받아 막막함을 느꼈다.
자포스 재직 12년차로 당시 인사담당 고위 관리자였던 크리스타 폴리 Christa Foley-현재는 ‘문화-숨겨진 그림 찾기’ 서클과 ‘자포스 인사이트’ 서클의 중심 링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당시엔 정말 싫었다. 뻔한 얘기투성이에다가, 너무 운영 규칙에 얽매였고, 사람에 초점을 두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새 시스템이 점점 좋아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홀러크라시는 혜택도 피해도 가져왔다.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경험과 전문성을 덜 강조하게 되자 ‘전형적’이지 않은 신참들에게 성공의 기회가 열리기도 했다. 회의에서 모든 사람이 발언권을 갖게 되자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마음 상태’, ‘청록색 지도 만들기’, ‘청록색 키트’ 세 서클의 중심 링크인 대니얼 켈리 Danielle Kelly(25)는 “회의는 모든 참가자가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생각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살펴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고객서비스 담당 직원이었던 데릭 노엘 Derek Noel(30)도 변화의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노엘은 자포스 문화 팀으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상사가 거부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홀러크라시가 뭔지 이해하자마자 ‘상사라도 나한테 그럴 수는 없겠네’라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엘은 직원들이 매주 강당에 모여 함께 영화를 보면서 노트북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행사 등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리고 그 아이
디어는 실제로 추진됐다. 현재 그는 이벤트기획과 직원 사기진작을 담당하는 ’펀지니어링‘ 서클 소속이다. 그는 “자포스에서 보낸 최악의 날은 다른 곳에서 보낸 최고의 날보다 낫다”며 “수직적 조직질서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자포스 인적경험 부서를 총괄했으며 현재는 ‘인간행동’ 서클의 중심 링크 역할을 하고 있는 홀리 덜레이니 Hollie Delaney에게 변화로 인한 가장 큰 충격은 관리자로서 일을 진행할 추진력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인적자원 담당 부사장이 되겠다는 그녀의 오랜 꿈도 자포스에선 실현이 불가능해졌다.
홀라크라시가 진행되면서, 덜레이니의 직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난 이제 할 일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왜 내게는 다른 역할이 없는지 생각해 봤다. 내게는 멋진 직함과 이런저런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충만감을 느꼈던 걸까? 결론은 ‘아니오’였다.” 자기경영 정신에 따라 덜레이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을 찾아냈다. 달리기를 즐기는 그녀는 직원 대상 경주 대회를 추진 중인 ‘건강하고 행복한 자포니언’ 서클의 중심 링크가 됐다. 하지만 경험 많은 인사 전문 임원이 달리기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과연 덜레이니와 자포스 양쪽에게 최선의 길인지는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있다.
개인이 이 시스템 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놀랍도록 개방적인 조직인) 자포스는 기자가 인터넷전화 스카이프로 ‘성장 및 배움 추구’ 서클의 정기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허용해주었다. 이 서클은 직원교육 부서와 유사하다. 중심 링크인 크리스 피크 Chris Peake를 포함해 총 10명이 참석했으며, 전략회의와 관리회의가 혼합된 형태였다(필자는 회의 주제를 누설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
회의는 ‘체크인과 체크아웃’으로 시작됐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참석자가 자신의 일과 개인적 문제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었다. 한 여직원은 ‘골칫거리인 열 세 살짜리 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일 외에도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자리였다.
7분간의 체크인이 끝난 후 업무 논의가 시작됐다. 내용이 본론에서 벗어나면(쉽게 말해 ‘딴 얘기’가 진행되면) 진행자가 제지해서 진행 속도를 높였다. 피크는 회의 의제가 “그때그때 정해진다”고 말했다. “의제는 보통 ‘갈등(tension)’이라 불린다. 현재 상황과 잠재적 가능성 간의 차이가 바로 갈등이다.” 갈등은 현실적 장애물부터 갑작스러운 아이디어까지 다양하며, 그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은 추후에 해결책을 찾기로 하고 정리된다.
이상한 표현(예컨대 “그 문제에 대해 당신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다”)은 많아도, 일반적인 회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중심 링크가 대부분의 발언을 했고, 명령이 아닌-가끔 죄책감을 자극하는 전략을 구사하긴 해도-요청을 통해 업무를 정했다. 회의는 한 시간 이상 이어졌고,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의 이름을 말한 후 종료됐다.
홀러크라시의 탄생 목적인 ‘내부 권력다툼 폐해 없애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2014년 판매 기획 담당으로 자포스에 입사한 녹스 부어텔라 Nox Voortella는 일부 관리자들이 새 시스템 하에서 과거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홀러크라시가 훌륭해 보였다. 하지만 내 주변의 옛 관리자들이 불안한 마음 때문에 경영 방식을 재조정하려고 했다. 그 결과 리더의 자질과 단결을 유도하는 능력이 있어 회사에 잔류했어야 할 인물들이 떠나갔다. 남은 관리자급들은 딱히 보여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부어텔라는 최근 좀 더 일반적인 기업으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홀러크라시에는 우수 직원에 대한 보상 절차 등 몇 가지 필수적인 요소도 빠져 있다. 이 시스템은 장기 근속이나 예산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업무평가도 없다. 그렇다면 연봉 액수는 어떻게 산정하고, 그런 결정은 누가 내리는가?
자포스는 자체적인 방식을 이제 막 운용하기 시작했다. 재무적인 실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개인이 갖고 있거나 새로 습득한 기술에 대해 받은 ‘배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걸스카우트처럼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자바 코딩 배지’, ‘상품기획 배지’ 등을 받을 수 있다. 자포스는 각 기술 별로 시장 가격에 따라 대가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한 법이다. 연봉을 모른다는 데에서 유발되는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자포스는 올해 연봉이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는 ‘할아버지 배지’를 만들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한 서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할지, 그리고 그렇게 보낸 시간을 일반적인 풀타임 근무와 유사한 것으로 인정할지 여부다. 각 서클은 업무 범위와 유사한 개념인 ‘피플포인트 people points’를 일정량 할당 받는다. 자포스 직원들은 피플포인트를 인당 100점씩 받아서 소속 서클에 배분할 수 있다. 서클이 마음에 안 들거나 일이 시원찮게 느껴지는 경우, 혹은 (일부 직원의 말처럼) 중심 링크가 자신이 원한 만큼 포인트를 승인하지 않는 경우에는 다른 새로운 서클을 찾아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일종의 연옥(煉獄)인 ‘해변’에 떨어지게 된다. 중심 링크와 갈등을 빚었다가 해변에 갈 뻔했었다는 부어텔라는 “그냥 회의실에 앉아서 ‘와이 코치((why coach)’라는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분야를 좋아하는지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해변은 ‘갈림길’로 이름을 바꿨다. 전담팀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존재 의미를 찾는 ‘영웅의 길’과, 다른 서클 가입을 지원하는 ‘전환 지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2주 안에 결정되지 않으면 해당 직원은 회사를 나가야 한다.
그러나 자포스에 혼란을 가져온 건 홀러크라시만이 아니었다. 회사는 지난 2014년 판매전략을 원점에서부터 재조정했다. 판매량 확대 중심에서 정가를 지불하는 소규모 최우수고객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자포스는 그와 거의 동시에 내부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아마존으로 옮기는 초대형 소프트웨어 이전도 시작했다. 슈퍼클라우드라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결과 웹에선 한 생명의 삶만큼이나 긴 시간인 2년 동안 자포스 웹사이트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자포스 제로’ 서클의 중심 링크이자 자기경영 전도사인 매니시 호내티 Manish Honnatti는 “슈퍼클라우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년 전 홀러크라시가 마침내 조직 전체에 시행되자 토니 셰이는 또 다른 결정을 내렸다. ‘자포스의 재탄생: 청록색으로 가는 길’이라는 4,300단어 분량의 글에서 셰이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청록색 조직(저서 ‘조직의 재창조(Reinventing Organizations)’에 소개된 개념)이 되기 위한 진보를 가속화하기 위해 ‘미봉책 제거’를 시작할 것이다.” 그는 “수직적 조직의 잔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조치로, 2015년 4월 30일을 기점으로 인간 관리자를 없앨 것”이라고 밝혔다.
셰이는 컨설턴트 프레데릭 라루 Frederic Laloux의 2014년 저서 ‘조직의 재창조’-그는 역사적으로 인간의 조직 구성 방식은 다양했다고 역설했다-를 참고하고 있었다. 라루는 이 책에서 각각의 방식에 컬러를 할당했다. 월마트 같은 현대의 일반적 기업은 주황색, 스타벅스 등 저자가 좀 더 진화했다고 판단한 기업은 녹색이었다. 청록색은 발전의 다음 단계였다. 자기경영, ‘온전한 자신’으로 일하기,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목적의식 등이 대표적 특징이다. 전화 인터뷰에서 라루는 “현대 경영은 근본적 결함이 있고 에너지가 소진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셰이는 청록색이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임을 확신했고, 홀러크라시 같은 절차를 통해서만 실현이 가능하다고 봤다. 전직 프로 포커선수이자 자포스 개발자로, 2013년부터 홀러크라시 이행에서 주요 역할을 한 존 번치 John Bunch는 “목표는 청록색, 체계는 홀러크라시”라고 표현했다.
거기에 평소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인 셰이가 드라마틱한 요소를 더했다. 그는 청록색 추구를 서약하지 않는 직원은 (매우 두둑한 퇴직금을 들고) 퇴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좋은 직원을 일부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는 불신자들 때문에 진보가 가로막히는 걸 더 우려했다.
나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크게 낙담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창립 초기부터 회사와 함께 성장해 리더로 올라선 많은 이들이 더 이상 회사에 필요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숙청을 당한 느낌이었다. 다음 문제는 집단적 혼란이었다. 홀러크라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청록색이라니? 가장 흔한 반응은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 끝나기는 할까’ 같은 의문이었다.
셰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약을 선택할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몇 명이 남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직원 1,500명 중 18%가 퇴사를 선택했고, 그 외에도 11%가 퇴직 혜택 없이 회사를 떠났다.
애토믹 리쿼즈 Atomic Liquors는 라스베이거스의 몇 안 되는 옛 흔적이다. 20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와 전광판을 가진 이 술집에는 핵실험 당시 구경꾼들이 지붕에 올라가 구경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셰이가 선호하는 복고풍이다.
셰이가 즐겨 마시는 음료 세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왼쪽부터 각각 다이어트 코카콜라, 페르네트브랑카 (*역주: 쓴맛이 나는 허브 리큐르), 화이트 러시안 (*역주: 보드카를 기반으로 한 칵테일)이었다. 그에게는 괴짜 같은 면도 있었는데, 약 5억 달러의 재산이 있으면서도 애완용 알파카 두 마리와 함께 에어스트림 Airstream 사 캠핑트레일러에 거주했다. 독신인 그는 회사를 가족으로 생각했다. 기자는 셰이와 함께 페르네트를 한 잔 마셨는데, 나이퀼 NyQuil 감기약 맛이 났다. 그리고 (화이트 러시안은 질색인지라) 맥주를 주문했다.
홀러크라시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떤 예상치 못했던 점이 나타났느냐는 질문에 셰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는 “심리적인 짐을 내려놓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놀랐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변화를 추진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돌이켜 보면, 미봉책은 더 빨리 끝냈어야 했던 것 같다.”
셰이는 자기경영이 경영전략이자 사회전략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셰이는 지난 몇 년 동안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에 ‘일과 삶의 공동체(work-life community)’를 건설한다는 목적 아래 다운타운 프로젝트 Downtown Project에 3억 5,000만 달러를 지원하고, 건설에도 동참한 바 있다. 자기경영은 일반적인 기업의 수직적 조직체계보단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호작용과 더 비슷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셰이는 사려 깊은 탐색자다. 그런 그와 다른 자포스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현재 회사 사업에 대한 의례적인 표현은 하지 않고 있다(셰이는 지난해 자포스의 영업이익이 역대 최고치였다는 말은 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자포스가 계속 흑자를 낸다면 아마존은 간섭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회사가 존폐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자포스는 2015년도 이익 목표치를 달성했지만, 몇몇 직원들은 2016년 목표치를 낮췄다고 귀띔하고 있다(회사측은 공식 답변을 거부했다). 홀러크라시 때문인지, 온라인 신발 판매 시장의 경쟁 심화 같은 뭔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홀러크라시의 가치가 증명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창시자인 로버트슨에 따르면, 홀러크라시가 완전 정착하려면 5~10년이 걸리는데, 기업에게 그 정도 기간은 영겁의 시간이다. 홀러크라시가 정말 성공을 가져다 주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심드렁했다. 그는 “이런 경우엔 최종 결과로 성공을 판단하지 않는다”며 “그건 사용하기 편할 뿐이며, 나는 그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약 300개 기업(그 중 자포스가 최대 규모다)이 홀러크라시를 도입했고, 그 중에선 이미 실패 사례도 나왔다. 3월 초 콘텐츠 사이트인 미디엄 Medium은 홀러크라시의 폐기를 선언했다. 자기경영을 연구한 컨설턴트 버드 캐델 Bud Caddell은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컨설팅업체 언더커런트 Undercurrent에서도 이 제도가 실패했다고 말했다. “홀러크라시는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경직되고, 복잡했으며 고객에게 관심을 쏟는 걸 방해했다.” 셰이의 다운타운 프로젝트조차도 홀러크라시를 시도했다가 2014년에 포기한 바 있다(셰이는 “프로젝트의 진행 단계상 도입 시기가 너무 빨랐다”고 해명했다).
홀러크라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하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자포스 최고 직원책임자인 제이미 노튼 Jamie Naughton은 ‘애완견 동반 출근’을 꼽았다. 홀러크라시 도입 이전이었다면 알레르기나 공포감 때문에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홀러크라시에선 의사 결정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핵심 질문 중 하나가 ‘시도해도 될 만큼 안전한가’ 이다. 결국 셰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인과 애완견의 동반 출근은 행동평가를 통과했다. 그러나 공포감을 느끼는 직원들은 개가 들어올 수 없는 ‘알레르기 구역’을 자체 선포할 수 있다. 노튼은 “자기조직(self-organization)은 직원 개개인의 판단을 허용한다”고 말했다.
자포스 직원들이 셰이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던 작년 봄, 한 직원이 홀러크라시 관련 경험을 공유해 달라며 캐델을 공개 포럼에 초청했다. 그는 직원 15~20명을 사전 인터뷰한 후 150명 앞에서 발표를 가졌다. 그는 그 때가 “깨달음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나와 대화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업무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캐델은 직원 사기진작 방안을 담은 이메일을 셰이에게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셰이는 내가 ’리더십‘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고, 편견에 빠진 행위자라고 말했다(셰이는 이에 대해 자신이 일반적으로 쓰는 어법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도, 긍정적인 조짐은 보인다. 일부 직원들이 경영전문가 세스 고딘 Seth Godin의 저서 ’더 딥(The Dip)‘을 인용하며 대전환의 시기에는 개선 전에 반드시 나빠지는 현상이 먼저 발생한다고 주장을 했다. 자진 퇴사 절차가 끝난 만큼, 변화를 가로막을 불신자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브랜드 아우라’ 서클(마케팅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을 이끄는 타일러 윌리엄스 Tyler Williams는 “우리는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친절하고 관대했던 과거의 분위기로 되돌아가고 있다. 홀러크라시를 무기로 활용했던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상부의 세밀한 관리가 아닌 동료 간의 견제를 통해 전보다 기업 차원의 질서도 잡히고 있다.”
문화를 다시 중심에 두려고 애쓰는 노력도 적지 않다. 관리회의 때마다 ’문화 점검‘을 의제에 올려놓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자체 개발한 6단계 갈등해결 절차도 홀러크라시의 경직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또, 자기경영 시스템에 잘 맞는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채용 절차도 손질을 하고 있다.
올핸즈 미팅 다음날 점심시간에 두 건의 파티가 열렸다. 음력 설 행사에선 여성들이 만두를 빚었다. 다른 하나인 밸런타인데이 행사에선 크루즈여행 테마로 의상 경연대회와 ‘과자와 문신’ 행사가 진행됐다. 홀러크라시는 사내 친목활동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노튼은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순위에는 못 들었지만, 아주 훌륭한 회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자포스는 내 가족이고, 다른 사람들도 자포스에서 그런 점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얘기다. 그러나 홀러크라시 덕분이 아닌, 홀라크라시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과였는지도 모른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JENNIFER REING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