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하>하청 청년의 잇따른 죽음.. '인식·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비상구 없는 ‘사회 밑단’ 하청 청년]

현장실습 강화해 맞춤형 인재 키워야

책임회피 막는 법 제도의 정비 필요해

실효성 있는 산재보험 위해 감독관 증원해야

지난 5월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희생된 스크린도어 하청업체 근로자 김모(19)씨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구의역 1번 출구에 모여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5월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희생된 스크린도어 하청업체 근로자 김모(19)씨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구의역 1번 출구에 모여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마다 안타까운 목숨들이 산업 현장에서 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죽음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하청업체에 내재한 안전 감독 미비 등 구조적인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임금이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 하청업체 근로자는 산업 재해 빈도도 가장 높지만 정작 산재보험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증가하는 취업률 속에 가려진 ‘하청 청년의 현실’

정부가 산업분야 전문 인력의 양성과 청년 취업률 감소를 위해 만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졸업생 취업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해마다 펴내고 있는 ‘특성화고·종합고·마이스터고 편람’을 보면 특성화고 졸업생 중 취업자는 2011년 21.2%에서 2013년 40.9%로 늘어났고, 마이스터고의 취업자는 이보다 급증해 2011년 29.4%에서 2013년 74.1%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 노동계 전문가는 “정부는 취업 중심의 정책동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그것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이야기”라며 “경기침체가 계속되며 당장 벌이가 필요해진 청년들이 임금 등의 처우를 가리지 않고 취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최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신규 채용된 청년(15~29세) 중 비정규직 비율은 64%였다. 2011년 55%, 2013년 60.2%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려워진 취업 시장과 경제 사정으로 인해 청년층 중 3분의 2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사회 첫 발을 내딛는다는 얘기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학교와 산업현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도제시스템이 일찍부터 도입된 독일, 스위스와 같이 직업교육훈련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공회의소 등의 직능단체들이 기업의 직업훈련을 관리·감독해 학생들이 현장 맞춤형 인력으로 양성되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청 청년을 단순히 일시적인 노동력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현장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는 잠재적인 노동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하인호 인천비즈니스고 교사 겸 청소년노동인권센터 활동가는 “독일과 같은 제도가 우리나라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겠지만, 교과 과정 내에 주기적인 현장 실습을 두고 숙련된 인력을 길러내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 책임회피를 위한 ‘하청의 고리’는 없어져야

“작업장에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은 거의 전부 하청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사고가 나더라도 쉽잖아요. 책임 회피하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경기도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양지훈(25·가명)씨의 이야기다. 지난 2007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펴낸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하도급업체 근로자 보호강화 방안’을 보면 전국 51개 원청업체 사업주에게 직영에서 사내하도급으로 전환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유해위험 작업 때문’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40.8%로 집계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유해한 작업 환경에서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보호 받는 직영 근로자보다 그렇지 못한 하청 근로자를 투입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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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근로자 중에서도 더 값싼 임금을 받고 있는 청년들은 유해 환경에 직접 노출되는 빈도가 잦다. 최근 발생했던 구의역 사고와 휴대폰 부품 하청 업체 실명 사건만 보더라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쉽게 유해 환경에 노출된 하청 청년들은 노출된 정도만큼 중대재해를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아주대 의대 민경복 직업환경의학과 교수팀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2010년 6월부터 10월까지 무작위 표본 추출한 경제활동 근로자 1만19명을 대상으로 근로자 건강과 산업재해에 대해 ‘취업자 근로환경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하도급업체 근로자가 원청업체 근로자에 비해 업무상 재해(손상)는 2.01배, 우울·불안은 2.95배, 근골격계 질환은 1.39배 많았다. 특히 업무상 질병으로 결근을 한 경험은 3.56배 높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송경숙 조사관은 “기본적으로 하청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조항 자체가 원청 업체에 많은 안전·보건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이 아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보건에 관한 협의체’에 하청 근로자를 참여시켜 적절한 예방·제거 조치 없이 유해·위험작업이 도급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도급 시 인가를 받아야 하는 유해·위험작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올 1월 ‘사내 하청 근로자 산재 예방 위해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정 권고’를 통해 건설업에만 적용되는 ‘원·하청 산업재해통계 통합관리 제도’를 나머지 하청 근로자에게도 적용시키고 재해율에 기초해 보험료율 및 입찰참가자격을 정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 하청 근로자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산재보험

국내 모 조선업체에서 용접일을 하며 사내하청 근로자로 일하는 김기만(32·가명)씨는 “하청 근로자들은 대부분 용접이 어려운 선주나 선미 부분의 작업을 담당하는데, 몸을 급격히 숙여서 위험한 난간에 걸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언제 산재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심각한 문제는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된 하청 청년들은 ‘다치고, 부러지고, 깨져도’ 산재보험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2년 전까지 지방의 한 발전소 하청 업체에서 경리로 일한 김이나(23·가명)씨는 일했던 2년의 시간 동안 현장직 하청 청년들이 다쳐 산재보험을 신청한 사례를 손에 꼽는다고 말한다.

그는 “다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 공상처리냐 산재냐 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며 “대부분의 하청 근로자들은 산재 처리를 받고 싶어하지만 회사와 반 강제적인 합의를 하고 일터로 돌아가는 장면을 몇 번이나 봤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산재위험직종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하청 근로자(조선업 기준) 중 단 7.2%만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 현장(조선업 기준)에서 얻는 대부분의 재해 치료비는 하청 업체에서 공상처리(56%)를 하거나 개인 부담(28%)으로 메우고 있었다. 공상처리는 근로자가 업무 중 입은 부상을 이유로 회사가 민법상 손해배상을 해주고 합의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산재처리에 준하는 금액을 직접 보상하는 제도고용불안정 상태에 놓인 하청 근로자의 경우 사측과의 관계를 고려해 산재처리를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측의 강요에 못 이겨 공상처리를 할 경우 처리 이후 장애가 남거나 재발하더라도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개인 실손의료비 보험의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국내 A보험사의 이희성(32·가명) 계리사는 “보험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위험직종에 종사하는 경우 보험 가입이 거절되거나 가입 가능한 보험가입 금액 한도가 낮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겸 공인 노무사는 “산재 여부가 하청 업체의 계약 갱신의 잣대가 되는 것과 피해자가 산재임을 입증 해야 하는 지금의 산재 신청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며 “하청 근로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산재 현황 파악과 안전을 수시로 감독할 산업안전감독관의 빠른 증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종호·정수현기자 김인경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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