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입국을 둘러싸고 날 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측의 ‘집단 탈북’이란 공식 발표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기획 탈북’이라며 짙은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보수단체에서 민변의 정치적 색깔에 의문까지 제기하면서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그 중심에 선 채희준(50·사진) 민변 통일위원장을 27일 경기도 일산에 자리한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직접 만났다.
앞서 지난 24일 경기도 시흥경찰서에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한 채 위원장은 “변호인 접견 거부, 심문기일에 출석시키지 않은 점 등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접견을 갔을 때 직원이 나와서 한 말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였다”며 “피수용자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자기 부모가 위임해 준 변호사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게 납득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접견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 맞다 해도 이는 부모의 위임 여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채 위원장은 해당 재판이 필요 없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잔인하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잘 지내는지 알고 있던 딸내미가 갑자기 없어져서 보니까 내가 갈 수 없는 곳에 있더라. 그럼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느냐”며 부모를 대신해 두 가지를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건강하게 잘 있는지’, 그리고 ‘왜 거기 있는지’를. 채 위원장은 “진위를 밝히는 것은 이념이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인권의 문제’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자진 탈북 여부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면 오히려 북한에 있는 그들의 부모들이 모두 받아들일 거라고 덧붙였다.
채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민변이 왜 이번 입국을 ‘기획 탈북’이라고 규정했는지 대표적인 의혹 5가지를 정리해보자.
<의혹 1> 동기의 부재
첫 번째, 구체적인 동기가 없다. 채 위원장은 “탈북 동기를 살펴보면 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 아니면 사고 친 경우. 그런데 이들은 어디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정적인 근무처에서 생활하던 이들이 정부 당국의 초기 발표처럼 ‘한류에 따른 동경’ 때문에 탈북한다는 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4월 8일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들 종업원은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드라마·영화·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실상과 북한 체제 선전의 허구성을 알게 됐으며, 최근 집단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식당 종업원 역시 북한 당국에 임금의 상당 부분을 상납하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차원이 다르다’고 응수했다. 그는 “탈북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은 밑바닥이 아니라 지하 수준”이라며 북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해당 종업원들은 경제수준이 매우 안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의혹 2>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입국
두 번째, 입국 과정이 석연치 않다. 해당 종업원들은 4월 5일 근무지를 떠나 4월 7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통상적으로 탈북자들의 1차 목적지는 태국 방콕에 있는 난민수용소다. 이곳에서 국정원 주도 하에 한 달 가량 정부 합동심문 조사를 거친다.
채 위원장은 “이 사람이 정말 북한주민이었는지 아니면 연변에 살던 조선족이었는지 또 가족관계는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확인한다”며 “직업, 경력 등을 일일이 조사한 후에 ‘탈북자가 맞다. 한국행을 원한다’고 결론이 나면 그제서야 한국에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조사 절차가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걸리는데 이틀 만에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니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의혹 3> 입국 직후 이뤄진 정부의 공식 발표
세 번째, 정부의 태도다. 입국 바로 다음 날 탈북 사실을 공개한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위직이라거나 특수한 과학자라면 이해되지만 평범한 북한 주민이 입국했는데 정부는 하루만인 4월 8일 바로 발표를 감행했다.
채 위원장은 “그 넓은 중국 땅에서 ‘류경식당’을 그렇게 빨리 찾아냈다는 점도 의심스럽다”며 언론 취재만을 통해 종업원들의 신상정보가 밝혀졌다는 이야기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18일 자주시보가 종업원들의 이름과 얼굴 등 신상정보를 보도하게 된 것도 정부가 먼저 ‘집단 탈북’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이다. 탈북자들은 북에 남은 가족들을 한국에 데려오고 싶어하기 때문에 자기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경우는 그 어떤 설명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의혹 4> 북한 가족들의 공식 송환 촉구
네 번째,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의 태도다. 채 위원장은 “탈북자 가족은 체제의 반역자인 셈이다. 반역자라면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야 되는데 분노를 표현하고 유엔에 호소하고 있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부모가 국제기구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과 북한 당국이 납치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해당 종업원들이 알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남북한은 북한 종업원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20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공방을 벌였다. 서세평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이날 제32차 유엔 인권이사회 ‘인권 보호와 증진에 관한 일반 토의’에서 한국 정보원들이 북한 종업원들을 납치했으며 이는 새로운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서 대사는 “납치된 북한 종업원들이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단절된 채 표현의 자유 권리와 법률적 보호를 거부당하고 있다”면서 즉각 석방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김인철 제네바 주재 한국대표부 차석대사는 “북한 종업원들은 자유 의사에 따라 한국에 입국했으며 한국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을 수용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 대사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탈출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했다.
<의혹 5> 13명 전체의 의사합치로 탈북
다섯 번째, 13명이 의사합치로 탈북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3~4명 단위로 소조를 이루고 있으며 직업동맹, 청년동맹처럼 각자 다른 조직에 속해 있다”며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들고 일어나면 곧바로 발각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13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마음으로 한국행을 선택했다는 건 탈북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이 굉장히 조직화된 사회라는 점과 상호감시가 이뤄지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부에 보고되지 않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채 위원장은 “이렇게 많은 의혹들이 있으니 단 한 명이라도 자의로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의구심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법원에 당사자들을 출석시켜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근거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판부의 소환에 ‘당사자 불출석 희망’으로 응하지 않은 것은 국정원의 변명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애초에 ‘여종업원들이 자의로 탈북했다’고 공개한 것은 정부이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의 발표를 확인하는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차폐시설을 통해 얼마든지 비공개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탈북자 가족에게 가해질 보복 우려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소송이 탈북자들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 것’이라는 비난에 대해 그는 “단지 기본권을 보장하는 체제로 바꾸자는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장의 보호 결정은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때에 한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정부 발표대로 ‘집단 탈북’이라면 대체 왜 보호 결정을 내려야 하냐고 채 위원장은 되물었다. 그는 외부와 격리시킬 근거가 없으므로 국정원장의 보호 결정이 위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민변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시각에 대해 그는 “이들이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 ‘조용히 그대로 놔두자’고 하면 그렇게는 못한다”며 “제가 그렇게 당할 수 있고 제 아이들도 그렇게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변이 아니라 국정원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민변의 주장처럼 단 한 사람이라도 자의로 입국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조치가 이뤄져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돌려보내면 남은 나머지 사람들의 가족이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고들 말하는데 그게 과연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또 “실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족들이 모두 처형당하거나 교화서에 갇힌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직위가 낮아진다거나 하는 불이익은 있지만 ‘탄압’을 받을 것이라는 건 어쩌면 우리가 하고 싶은 상상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일어나지 않은 일, 상상의 산물을 전제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지나친 억측이라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난 24일 열린 ‘민변의 탈북자 인신구제청구,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토론회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같은 법조인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직접 묻고 답하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며 “제의가 온다면 언제든 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자유와 통일을 위한 변호사연대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민변의 인신구제청구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각하 해당 사례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글·사진=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