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뜨는 국가, 지는 나라.

김희원 생활산업부 차장

김희원 생활산업부 차장김희원 생활산업부 차장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20여년 전. 이 나라는 한마디로 기회와 풍요의 상징이었다. 세상에 이런 강대국도 있구나 싶을 만큼 곳곳이 부유함과 놀라움으로 넘쳐났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화물열차의 컨테이너 행렬과 이를 대변해주는 소비력에서 과연 미국을 뛰어넘는 국가를 생전에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일었다.

그로부터 20여년. 다시 찾은 미국 남부에서 보게 된 것은 놀랍게도 안 되는 것이 더 많은 한 나라에 대한 작은 분노였다. 터미널만 6~7개에 터미널마다 게이트가 40~50개에 달하는 이 나라 공항의 크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되레 새로운 것은 그리 많은 비행기가 서는 터미널에 걷는 속도를 도와줄 무빙워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1980년대 이후 본 적조차 없는 똑딱이 전기 스위치가 최고급 호텔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컴퓨터로 출입국 심사를 마쳤음에도 다시 사람을 거쳐야 하는 구형 시스템이 못내 짜증스러웠다.


발전의 중심에서 기준에서 벗어난 나라는 리딩 국가로의 위상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가장 보수적인 백인의 땅, 미국 남부에서 확인한 것은 정점을 지난 나라의 이면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었다. 영국이나 홍콩·일본이 이미 그러했던 것처럼 ‘발전의 속도전’ 없이 현재에 안주하며 매뉴얼화돼 살아가는 모습이 이들에게서도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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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남부에서 맞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의 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인들이 잠든 사이 시시각각 타전되는 투표 결과에 미 특파원들은 때로는 고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도 믿기 힘든 결과에 넋 나간 표정이었다. 그러나 미국 내부에서도 정치 헌금을 걷지 않고 상대 당보다 적은 물자와 인력으로 대선을 치르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되레 신선하다고 믿는 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장 이기적일 때 가장 부유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영국에서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이었다. 기준이 사라진 땅에 끝이 온다는 냉엄한 교훈을 이들의 존재가 웅변하는 듯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 자체는 두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대체할 국가들이 지닌 기준의 수위를 생각할 때 디스토피아의 미래에 한 표를 더하게 된다는 것은 두렵다. 영미권보다 민주화 역사가 짧고 소수에 의해 운영되며 민의가 보편적이지 않은 나라들이 현재의 대체재다.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과 이슬람이 그렇다. 최첨단 소비재의 주요 생산국이자 중국이 유일하게 모방하고, 중국을 유일하게 무시하는 우리나라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발전만큼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전 세계가 인정할 만한 보편타당한 기준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세계의 중심에 서보기도 전에 혼란만 더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 기회를 잡으려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기준임을 영원히 우뚝 서 있을 것 같았던 나라, 미국의 뒷모습에서 느끼게 된다. /애틀랜타=heewk@sedaily.com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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