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한국 방송에 오프라 윈프리가 없는 이유

연승 문화레저부 기자



아침 8시25분이면 어김없이 “안녕하십니까?”라며 시청자들에게 소박한 목소리로 인사하던 이금희 아나운서를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됐다. 18년하고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KBS 1TV ‘아침마당’을 진행해왔던 그가 갑작스럽게 지난달 30일 7,637회를 끝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18년 동안 남자 진행자는 이계진·이상벽·송지헌·손범수·김재원 아나운서 등으로 교체됐지만 그는 ‘안방마님’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아침마당’을 지켜왔다. 그는 자리만 지킨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애환을 경청하며 때론 함께 웃고 어루만지며 우리들의 마음도 지켜냈다. 그의 갑작스러운 하차 소식에 시청자들의 아쉬움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이는 그가 시청자들의 마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하게 한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하차를 보면서 ‘과연 국내에서는 오프라 윈프리가 나올 수 없는 것인가’라는 자괴감이 든 것은 기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25년 간 진행하던 ‘오프라 윈프리 쇼’를 57세의 나이에 스스로 그만뒀다. 어떤 외부 결정도 없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 하면 오프라 윈프리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듯 ‘아침마당’하면 떠오르는 것은 방송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과 이 아나운서의 단정하고 소박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일 만큼 그는 ‘아침마당’의 상징이다.


이 상징이 국내 방송에게 주는 의미도 만만치 않다.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통틀어 50대 여성 진행자가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끄는 동시에 남자 아나운서의 역할에 조력하는 포지션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자 진행자가 여성 진행자보다 경력과 나이가 많으며 남성 진행자가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여성 진행자는 이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관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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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역할도 처음에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위치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남성 진행자로 후배들이 낙점되면서 그의 위치가 주도적 진행자로서 바뀐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행은 사실상 ‘원톱’ 진행이 아닌 선배로서 남성 진행자를 리드하고 배려하는 것에 가까웠다.

KBS는 이금희 아나운서 교체 이유로 비용절감과 세대교체를 들었다. 그러나 KBS가 비용과 세대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동안 간과한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시청자들의 수신료로 방송을 제작하는 KBS가 그토록 사랑받고 신뢰받는 진행자를 교체하면서 시청자들의 의견이나 정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아나운서는 2013년 이미 출연료를 동결했다.

두 번째는 공영방송으로서 양성평등에 보다 가치를 뒀어야 했음에도 부자연스러운 세대교체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여성 진행자로서 이 아나운서가 방송역사에 주는 의미는 공영방송이 저버려서는 안 될 가치는 아니었을까.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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