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약품 자동판매기 설치 -찬성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

의료비 절감·시간절약 등 소비자 편익 개선





약국 앞 의약품 자동판매기 설치 허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정부는 환자 편의를 위해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에도 약사의 복약지도를 거쳐 자판기로 의약품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자판기 취급 의약품은 일반의약품으로 제한되며 약사가 자판기에 설치된 영상기기를 통해 화상으로 환자에게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 약국 개설자는 의약품의 판매·복약지도 등 전 과정의 화상상담 내용을 녹화해 6개월간 보관해야 한다. 약 자판기 설치 찬성 측은 약사의 복약지도를 강화하고 복용 사고를 막기 위한 정확한 정보 제공이 전제될 경우 일반의약품 사용에 대한 소비자 편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대한약사회 등의 반대 측은 기계를 통한 상담으로는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기 어려워 약물 오남용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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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일반의약품(OTC) 자동판매기 판매에 찬성한다. 전문의약품이 아닌 일반의약품은 보통 소화제·지사제·진통제·진해제 등의 구급용 의약품, 포비돈액, 요오드팅크, 암모니아수 등의 외용제를 포함한다. 굳이 의사 처방이 없어도 되는 일반의약품을 약국에서만 판매할 필요가 없다. 의약품은 안전성·유효성 및 사용 적합성을 고려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구분한 만큼 일반의약품을 자동판매기에서 판매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의약품의 자판기 판매는 의료비와 의료 관련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켜줄 수 있어 국민 복지 증진에 긍정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영국·독일·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 대부분은 소비자의 자가 치료를 허용하는 범위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의약품에 한해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며 허용 범위는 각국 특성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의약품 분류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은 지난 1999년 일반약품의 슈퍼마켓 판매를 확대했다. 2004년 일반약품 판매규제를 완화해 소화제·정장제 등의 편의점 등 소매점 판매를 허용했으며 2009년부터 감기약도 슈퍼마켓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도 일반의약품은 약국·편의점·대형마트 등에서 판매하고 있고 약 800여개 제품군에 10만개의 품목이 해당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약국 외 판매 허용 여부 결정에 의학적·약리학적 평가기준, 즉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또 사회경제적 평가 기준인 사회적 편익과 비용, 보건정책적 평가 기준인 국민 복리 증진, 의료비 절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자동판매기 판매는 약물 오남용 위험이라는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으나 진료 비용 및 시간 절약 등 소비자의 선택권과 경제적 편익을 상당히 증진시키기 때문에 위험과 편익 중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인가 하는 의료소비자와 사회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 의료소비자의 편익 측면에서 진료비 감소, 교통비용 감소, 시간비용 감소, 소비자 불편 감소, 치료 시기를 놓쳤을 때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의 감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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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동판매기로 판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의 선정은 안전성이 있는 가정 상비약 수준의 일반의약품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대상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외국 사례를 참조해 대상 범위를 선정하는 것도 전략적이다. 외국에서 공통적으로 약국 외 판매가 허용되는 의약품부터 자동판매기 판매를 허용하면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일반의약품의 부작용과 오남용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의약품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자동판매기 의약품 판매 시 약사의 복약지도, 즉 의약품의 명칭·용법·용량·효능·효과·저장방법·부작용·상호작용 등의 정보를 자판기 또는 약품에 자세하게 제공하는 것을 강화하면 된다.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해 의약품을 복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한다면 자동판매기 판매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의약품 자판기 판매 허용 여부에 대한 기나긴 논쟁보다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 개발에 더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즉 자동판매기 판매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자동판매기 판매 관련 광고규제, 자판기 판매 장소의 조건, 자판기 사용 적합성에 대한 지침 등의 정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담아 자판기 판매를 허용하는 것이 옳다. 또 정책적 노력으로 자동판매기에서 약품 판매 시 약품 포장단위 제한, 복약설명서 제공 방법에 대한 지침, 의약품 유통기한 표기, 구입 연령 제한 방법 개발 등을 포함할 수 있다. 미국은 오남용 가능성이 낮고 평균적인 소비자가 스스로 증상을 판단해 약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일반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포장에 정보가 전달돼야 하는 등 소매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의약품의 종류와 범위를 상세히 정의해놓고 있다.

소비자들의 높은 의약품 판매 요구를 충분히 반영해 의약품 오남용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지속적인 교육·홍보 강화가 전제된다면 자판기 판매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 표시 제도의 적극적 활용, 포장단위가 지나치게 대형화돼 원하지 않는 의약품의 대량 구입 방지 등 일반의약품 유통 개선을 전제로 자동판매기 의약품 판매에 찬성한다.

의약품 자판기 판매는 소규모 제약사들에도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자칫 자판기 판매 문제가 제약업체와 유통업체 간의 갈등이 될 수도 있는데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비자의 편리성, 소비자 주권, 소비자 요구가 우선시돼야 한다. 소비자들이 주말에 외지에서 약을 사는 것이 불편할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행 등에 대비해 준비해둔 비상약은 유효기간을 넘기기 일쑤다. 편리하게 필요한 장소에서 비상약·일반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국민 안전을 위해 오남용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제한적 자동판매기 판매는 필요하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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