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포시즌스의 위대한 서비스 구축하기

이저도어 샤프 ISADORE SHARP가 뛰어난 고객 응대로 유명한 포시즌스 Four Seasons 호텔 왕국을 어떻게 구축해왔는지 살펴보자.

샤프가 겨울에 체류하는 팜 스프링스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샤프가 겨울에 체류하는 팜 스프링스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저도어 샤프가 1961년 호텔을 짓기 시작했을 때, 그는 서비스산업(Hospitality Industry)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샤프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것을 제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예컨대 그는 최대한 호텔 방의 정숙성을 유지하기 위해 배관이 콘크리트에 닿지 않도록 설계했다. 또 고객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주차 요원부터 고위 임원까지 모든 직원들에게 고객 요구에 즉각 응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러한 투철한 고객 서비스 정신은 포시즌스 호텔의 상징이 되었다. 올해 84세의 샤프가 여전히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포시즌스 호텔 체인은 현재 41개 국가에서 96개의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연간 총 매출은 4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샤프는 “개발업자들이 새로운 포시즌스 호텔을 짓고자 할 때, 지금도 회사가 세부 건설 방향과 직원 고용을 주관하고 있다”며 “단순히 포시즌스 이름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샤프 회장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사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양친은 모두 이민자였는데, 1920년대에 폴란드에서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그 후 캐나다로 이주했고, 1931년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유대인 거주지역이었던 토론토 시내에서 주택 건설업을 했다. 어머니는 하숙을 치셨고,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집을 팔기도 하셨다. 내가 16세가 될 때까지 우리는 15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여름에는 아버지와 함께 건설작업을 하곤 했는데, 참 재미 있었다. 건축가가 되고 싶어 토론토 라이어슨 대학(Ryerson Institute in Toronto)에 입학했고, 졸업 후엔 아버지 일을 도왔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서 많은 일들은 아주 갑작스럽고 우연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1955년 한 친구가 작은 모텔을 짓기로 하고, 그 일을 내게 맡겼다. 나는 출입이 제한적인 고속도로(limited-access highway) 옆의 모텔이 잘 된다면, 시내에서 해도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도심에 모텔을 짓기로 했다. 그 후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만 5년이 걸렸다.

다행히 매형과 그의 친구, 아버지가 각각 9만 달러씩 내게 자금을 대주었다. 노바 스코샤 은행에서 12만5,000달러를 대출 받고, 그레이트 웨스트 생명보험의 사장 세실 포사이스 Cecil Forsyth로부터 나머지 자금을 융통했다. 가구는 대여를 했고, 하청업체들도 받아야 할 돈 일부를 호텔 오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호텔을 짓는데 200만 달러 정도가 들었는데, 오늘날 표현으로 치자면 차입경영을 한 셈이었다.

객실 요금은 1박에 10~12달러로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다. 호텔 사업에 무지했던 나는 총지배인을 고용했다. 내게 그 사업은 단순히 하나의 부동산 거래에 불과했다. 오픈 후 바로 매각할 수도 있는 모텔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공간 본연의 목적과 스타일에 맞게 어떻게 모텔을 운영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고객들을 마치 집에 방문하는 손님처럼 환영하고 대접하는 것이었다. 모텔사업은 꽤 성공적이었고, 나는 그래서 두 번째 도전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토론토 외곽에 객실 200개를 갖춘 리조트를 짓는 일이었다.

당시 내 수입은 가족을 근근이 먹여 살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노바스코샤 은행은 60만 달러를 대출해주었다. 부동산 대부회사 그레이트 웨스트 라이프와 협력업체들도 이에 동의했다. 우리는 리조트 이름을 더 인 온 더 파크 The Inn on the Park라고 지었고, 이 리조트 역시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그후 나는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아내 로잘리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다. 1963년 당시 예산이 굉장히 빠듯했기 때문에, 우리는 평균 경비를 정해서 쓰기로 했다. 하루는 시내에서 가장 허름한 호텔에서 묵고, 다음 날은 최고급 호텔에서 숙박하는 식이었다. 런던에서 묵었던 도체스터 Dorchester는 입이 딱 벌어질 정로 멋졌다. 토론토로 돌아온 나는 도체스터를 소유한 로버트 맥앨파인 컴퍼니 Robert McAlpine Company에서 근무했던 한 건축업자와 우연히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만남이 계기가 돼 런던에서 운영할 호텔을 건설하기로 계약을 했다. 더 인 온 더 파크 런던 The Inn on the Park London은 1970년 오픈했고, 운영 1년 만에 유럽 최고 호텔로 선정됐다. 경쟁업체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차원의 고객서비스 덕분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우리는 1974년 밴쿠버에 2,500만 달러 규모의 호텔을 지은 후 임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 탓에 자금난을 겪게 되었다. 나는 당시 호텔 부지를 소유한 3개 업체들에게 “자금이 부족해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을 수도 없고, 그 동안 진 빚을 갚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부지 소유주들은 모두를 살리는 방식으로 계약서를 다시 썼고, 나는 호텔 완공을 위한 추가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통해, 호텔 건설과 소유에 따른 자금 리스크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후 나는 호텔 건설이 아닌 호텔 사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결과 포시즌스가 호텔 소유에는 큰 관심이 없는 호텔 자산 관리회사가 되었다.


아내는 어떤 일에도 결코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도맡아 아이 넷을 양육했다. 그러다 1978년 당시 10대였던 아들 크리스가 흑색종(melanoma)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으로 아들을 잃는다는 건 부모로서의 삶 자체를 영원히 바꿔 놓는 경험이었다. 크리스가 죽은 후 테리 폭스 Terry Fox (*역주: 캐나다의 운동선수이자 인도주의자, 암 연구가) 가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음에도, 암 연구를 위한 자선 마라톤을 시작해 캐나다를 횡단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통해 큰 영감을 받았다. 내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유산 하나를 꼽는다면, 암 연구비 모금 마라톤 대회인 테리 폭스 런 Terry Fox Run을 창설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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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6년 회사를 상장하기로 했다. 그것이 자산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이자, 회사를 알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전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서구 국가들이 불경기의 늪에 빠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특히 미국 사업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1990년 1,700만 달러였던 순이익이 이듬해 280만 달러로 급락했다. 그러나 경제가 회복되자, 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소유 주식을 판 적이 없었는데, 1994년에 재무 계획의 일환으로 주식 일부를 매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알와리드 빈 타랄 빈 아브둘 아지즈 알 사우드 Alwaleed Bin Talal Bin Abdul Aziz?al Saud가 당시 주가보다 25%를 더 쳐주겠다는 제안을 해 와, 회사 지분 25%를 매각했다.

몇 년 후 이 왕세자는 친구 빌 게이츠와 논의를 했고, 결국 우리 셋은 2007년 회사를 다시 비상장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34억 달러 규모의 거래였다. 나는 회사 지분을 재매각할 필요가 없도록 소유권을 확보해 미래를 위한 안정성과 투명성을 꾀하고 싶었다. 회사의 유산은 이제 굳건히 지켜지고 있고, 나는 현재 지분 5%를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선 테러가 발생하고 있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기에 살고 있다. 상거래란 모든 이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에, 사업은 사람들을 통합할 수 있다. 따라서 사업 자체가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회사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사업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개선됐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포시즌스가 많은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됐다고 자부하고 있다.




◇ ‘황금률’ 문화 조성하기 ◇
샤프의 경영 철학 덕분에 포시즌스는 포춘이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고객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회사가 직원에게 기대하는 고객 응대 방식과 똑같이 직원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

호텔을 업그레이드 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개선하는 것은 바로 직원 시설이다. 비 관리직 근로자들은 총지배인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호텔 시스템 개선에 대한 제안을 하고 있다.

인원 감축이 필요할 때…
포시즌스만의 방식대로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 침체기에 대응을 하고 있다. 해고된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상황이 나아지면 재고용한다.

사람들의 기대치는…
국가별로 다르다. 하지만 황금률에 따라 운영하면 어디에서나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황금률이란 모든 종교의 경전에 다 적용되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Interview buy Dinah Eng

Interview by Dinah 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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