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축구팬들을 흥분시켰던 유로2016이 끝났다. 결국 후반 막판 교체로 들어온 포르투갈의 에데르가 연장 후반 4분 중앙으로 돌진하면서 중거리에서 쏜 공이 홈팀 프랑스 골문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면서 승리는 포르투갈의 품으로 돌아갔다. 녹화된 하이라이트만 보면서도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결승골 장면은 극적이었다.
축구를 보면서 전 후반과 연장전까지 합쳐 타임아웃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이런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면 꼭 내뱉는 말이 있다. “이래서 축구를 보는 거야”하는 말이다. 개인기로 수비를 젖히고 또 젖혀서 순간적으로 벼락같은 슛이 터지면 말 그대로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 간다. 또 한편 이런 장면도 참 좋아한다. 공격수 한 사람이 개인기로 수비수들을 자신에게로 몰아놓고는 골문 앞으로 센터링을 올린다. 그 순간 골문 앞에 있던 공격수가 뛰어 올라 헤딩골을 성공 시키는 장면이다. 이 때 골을 넣은 선수는 골이 들어간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해 준 선수에게로 달려가서 뛰어올라 허그를 한다. 그리고는 “네 덕분에 결승골이 터졌다”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겠지만 온 몸으로 어시스트를 해 준 선수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골 세리머니를 함께 하며 결승골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골 세리머니를 마치고 골 어시스트를 해 준 선수가 곧장 심판에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심판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셨죠? 지금 이 골은 거의 내가 만든 골입니다. 내가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비수를 내가 다 내 쪽으로 몰아놓고, 기가 막히게 센터링을 했습니다. 게다가 지금 골을 넣은 선수도 다 내 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심판님! 이 골은 내가 넣은 것으로 공식적으로 기록해 주세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분명히 이런 일은 상상 속에나 있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장면이다. 어시스트를 한 선수는 골을 성공시킨 동료와 얼싸 안고 기쁨을 나눈 후에 곧 바로 박수 치면서 엄지손을 치켜 세워주는 ‘엄지척’을 하고, 재빠르게 다시 자기 포지션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정상이다. 어시스트는 어시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팀 전체가 승리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몇 년 전에 아주 의미 깊게 들었던 라디오인터뷰가 하나 있다. 한국의 빌보드차트라고 하는 가온차트가 진행한 2013 K팝 어워드 시상식에서 독특한 부문의 상을 받은 한 가수의 이야기다. 가수라고 하면 화려한 무대 조명과 청중들의 집중도 높은 환호를 연상하겠지만 상을 받은 이 가수는 그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있었다. 이른바 코러스 가수였다. 2013년 코러스 가수 부문에서 상을 받은 김효수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18년 동안 무려 1만 5,000곡의 코러스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코러스 가수는 기본적으로 가수의 음색을 파악을 해서 거기에 가장 잘 묻는 목소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1번”이라고 하면서, “튀면 안 되고, 악기랑 목소리 뒤에 예쁘게 잘 묻어 있어야 된다”는 지론을 펼쳤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1선이 아니라 2선에 서고, 자기 목소리와 주장이 묻혀서 좋아할 사람은 사실 그 누구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자기 목소리만 관철시키고, 자신의 입장만이 최선이기 때문에 자기만 드러나야 한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은 절대로 천국을 지향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보면 어시스트나 코러스 가수는 없고, 모두가 골잡이요 솔로 가수들밖에 없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세상,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우선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스스로 도움을 주려는 어시스트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덧붙여 더욱 예쁜 노래가 되게 하는 코러스 가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더 많아질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