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SKT-CJ헬로비전 M&A 불허 확정] 기존 입장 재방송…'무늬만 소명 기회'였던 공정위 전원회의

한국과 실정 다른 美·EU와 동일 기준 적용 논란

CJ 해명에도 "알뜰폰 시장 독행기업" 밀어붙여

업계 "결론 미리 지어놓고 확인사살한 것" 푸념

18일 신영선 공정위원회 사무처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브리핑을 통해 지난 15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금지하기로 확정한 전원회의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18일 신영선 공정위원회 사무처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브리핑을 통해 지난 15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금지하기로 확정한 전원회의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공정위원회가 전원회의를 열고 7시간 넘도록 심의를 했지만 지난 8개월 동안 장외공방 벌였던 얘기를 재방송하는 수준이었어요. 사실상 결론을 다 지어놓고 요식 행위를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공정위가 과천정부청사에서 전원회의를 열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간 인수합병(M&A) 승인 여부를 최종 결론 짓던 지난 15일 저녁 회의 현장을 빠져나온 한 이해당사기업 관계자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해당 전원회의는 앞서 공정위 사무국이 두 업체 간 인수합병 전면 불허를 골자로 한 심사보고서에 대해 해당 업체 등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무늬만 소명의 기회였을 뿐이었다. 실상은 인수합병 불허를 확정 짓기 위한 ‘확인 사살’의 자리처럼 느껴졌다고 이해당사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공정위의 재탕 결론=이해당사기업들의 이 같은 예감을 결국 현실로 돌아왔다. 전원회의 후 사흘이나 지나 공정위가 발표한 전원회의 결과는 인수합병 불허였다. 특히 이번 발표 내용에는 역시나 SK텔레콤·CJ헬로비전의 소명내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두 당사기업들은 국내 유료방송시장에서 전국 단위가 아닌 권역별로 잘게 쪼개어 시장지배력 등을 판단하는 것은 요즘 조류에 맞지 않는다고 호소했지만 전원회의는 CJ헬로비전의 방송 지역을 전국 단일시장이 아닌 23개 방송권역 시장으로 나누는 잣대를 유지했다. CJ헬로비전 측은 SK텔레콤에 인수합병되더라도 시청자 이탈에 따른 광고수익 감소, 수입원 다각화(홈쇼핑 등) 저해 등의 우려가 있어 유료방송 서비스 가입자 요금을 인상할 이유가 없다고 설득했지만 전원회의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정위 측은 대신 ‘가격상승압력(UPP) 분석’이라는 복잡한 계산식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니 두 회사가 결합하면 가격 인상 압력이 있다더라는 식의 논리를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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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폰 사업의 시장지배력 판단 기준도 논란이 됐다. 공정위는 CJ헬로비전이 국내 이동통신산업(MNO)의 선발 대기업들을 파격적인 가격정책과 서비스로 위협하는 파괴적기업(독행기업)이라고 단정했다. 또한 SK텔레콤 자회사인 SK텔링크와 CJ헬로비전의 알뜰폰 시장점유율 합계가 28.45%에 달해 경쟁을 제한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당사기업의 한 법률대리인은 “CJ헬로비전이 마치 미국의 3위 이동통신 대기업인 T모바일처럼 시장경쟁 구조를 휘젓는 독행기업이라는 게 공정위의 판단인데 대기업 통신망을 빌려 쓰는 CJ헬로비전이 무슨 그런 힘이 있겠느냐”며 “공정위는 CJ헬로비전이 아이폰을 출시하는 등 혁신적인 마케팅을 펼쳤다고 하는데 그 아이폰 제품은 출시 후 1년 된 리퍼폰(재생폰) 상품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해외 M&A 사례 놓고 아전인수 해석 논란=공정위는 이번 심사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아전인수격으로 끼워 맞췄다는 논란도 사고 있다. 공정위는 전체회의 결과 발표자료를 통해 지난 2009년 이후 기업결합이 불허된 미국·유럽의 7개 사례를 예시했다. 또한 신영성 공정위 사무처장은 18일 이와 관련한 기자 브리핑을 통해 해외사례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정책당국들이 방송통신기업 결합 승인 심사 시 전국시장이 아닌 지역별(일종의 방송권역별) 기준으로 나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계 의견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워낙 국토가 넓고 중앙정부가 아닌 주 단위로 지방행정이 이뤄지는 연방제 국가라 지역별로 심사가 진행돼 우리나라의 상황과 다르다는 것이다. EU의 경우는 신 처장의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심사가 전국시장을 기준으로 이뤄지며 지역별 기준 심사가 진행된 사례가 일부 있지만 주류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유럽집행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2000년대 이후 2014년까지 기업결합이 승인된 방송 미디어 기업 간 인수합병은 12건에 달하며 이들 대부분이 지역권역이 아닌 전국시장 기준으로 심사를 받았다.

공정위가 이 같은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입장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것을 놓고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정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부 영향력 있는 방송사 등이 이번 인수합병에 적극 반대하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여권 고위층이 부담을 느끼고 불허 쪽으로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미 3월부터 경쟁 제한성의 문제를 발견해 장기간 검토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반박했다.

◇희비 엇갈리는 통신업계=이번 결정에 대한 불복 여부를 놓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간에는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되고 있다. CJ헬로비전은 이날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후속 절차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지만 SK텔레콤 측은 “행정소송 등 후속 절차에 실익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회의적인 분위기를 내비쳤다. 이번 인수합병을 반대해온 KT와 LG유플러스는 “방송·통신 시장의 독과점 심화, 소비자 후생저해 등 부작용을 계속 지적해왔으며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입장 자료를 냈다. /민병권·임세원기자 newsroom@sedaily.com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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