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제조업리스타트]"제조업혁명 갈길 바쁘다" 노동자천국 스페인도 노사협력 기치

<4> 노사혁신 없인 미래 없다

진보냐 퇴보냐 갈림길서 한국은 '연례 파업'

스페인 르노공장은 노조가 자발적 임금동결

노사 한발씩 양보...패러다임 변화 대비해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결렬을 선언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지난 19일 본격적인 하투(夏鬪)에 돌입했다. 기본급 15만2,050원(7.2%·호봉 승급분 제외)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일반 및 연구직 조합원 승진 거부권 부여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수주 절벽에 마주한 조선업계도 생존을 위한 자구안 이행에 반대하며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제조 혁명을 외치며 생산성 제고에 나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똑같은 노사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노조 요구→사측 거부→파업 돌입→쌍방 비난→막판 타결’의 악순환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등 강성 노조의 파업이 거르면 어색할 정도의 연례행사가 돼버렸다는 자조도 나온다. 파업이 ‘정치 노조’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 전 세계 제조업계는 진보냐 퇴보냐의 변곡점에 서 있다”면서 “노사가 한 발씩 양보해 다가올 제조업 혁신에 하루빨리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미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제조업의 본질은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생산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본질인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더스트리(Industry) 4.0’ ‘스마트 공장’처럼 기존에 사람이 하던 역할을 로봇과 시스템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제조 방식과 공장 운영 시스템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제조업체들은 이런 패러다임 변화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노사 간 양보를 통한 대타협은 전 세계 제조업체들이 미래 패러다임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쏟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런 전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과 동떨어져 있다. 지금 우리나라 기업의 노사 관계로는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에 준비는커녕 뒤늦게 따라잡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조가 성과급과 연봉, 복리 후생과 같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제조업 혁신에 대비하는 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노조가 시대 변화를 인지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면서 “사측도 과거처럼 ‘노조의 주장은 과도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불성실하게 대화에 임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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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전자·정보기술(IT)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변화의 대열에 동참하자는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LG그룹 계열 전자 부품회사인 LG이노텍 노사는 최근 생산직 직원에 대해서도 호봉제를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성과와 역량에 따라 임금을 차별화해 지급하겠다는 데 노조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성과와 역량 위주로 생산직 임금 체계를 바꾸고 호봉제 역시 점진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조선·자동차 업계 노조가 머리띠를 둘러맬 때 이들 기업은 대승적 차원의 양보를 몸소 실천해 박수를 받았다.

이처럼 우리나라 극히 일부 기업에서 나타나는 노조의 기득권 양보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노동자 천국’으로 불리는 스페인·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에서조차 노사 관계 개선의 변화가 움트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제조업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 1996년까지 20년 가까이 사회당이 장기 집권한 스페인은 친(親)노동자 정책이 뿌리내린 대표적인 국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주력 차종 판매 부진, 자동차 생산 방식 변화를 노동자들이 직접 겪으면서 스페인 노동시장에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 사례다.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연 30만대에 가까운 자동차를 생산하던 르노 주력 사업장이었지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생산량이 10만대 아래로 급감했다. 수천명의 노동자가 공장을 떠났고 공장은 폐쇄 위기에까지 몰렸다.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바야돌리드 공장은 2014년 자동차 10만대 고지를 회복했다. 지난 2007년 이후 처음이었다. 650여명의 신규 인력도 채용할 정도로 여력이 생겼다. 바야돌리드 공장이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과 초과 근무수당 양보, 근로시간 탄력 운영에 동의한 이른바 ‘고용-임금 빅딜’이 이뤄진 덕이 컸다. 노사가 한 발짝씩 물러서면서 미래를 대비해 공존을 택한 사례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위원은 “기술 혁신으로 인한 변화가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만 준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 “불가항력적 변화에 대비해 노사가 선제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임직원 재훈련과 적응의 문제를 새로운 노사 문제의 어젠다로 삼아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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