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유럽에서는 교회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불경하게 여겨 여성이 교회에서 노래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교회는 여성 성부의 노래를 담당할 사람들이 필요했고 해결책으로 남성이지만 여성 목소리를 내는 가수가 등장하게 된다. 즉 카스트라토(Castrato)의 탄생이다.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높은 음역을 내는 남성가수를 뜻한다. 변성기 전의 소년을 거세, 성대가 성숙하는 것을 막아 어린이 목소리를 유지토록 한다. 반면 육체는 성장해 어른의 힘을 지니게 되니 목소리에 힘이 더해진다. 여성 소프라노나 알토보다 훨씬 넓은 음역과 유연성을 가진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스트라토의 최고 전성기는 1650년에서 1750년까지 약 100년 정도다. 바로크 시대의 절정기다. 바로크 오페라에서 카스트라토는 주로 영웅적인 남성이나 신의 역할을 했는데 예컨대 몬테 베르디의 ‘포베아의 대관’ 중 네로 역, 헨델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중 카이사르 역, 글룩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중 오르페우스 역이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카스트라토 양성 학교까지 있었다. 18세기에는 1년에 약 4,000명이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해 거세를 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카스트라토는 ‘카를로 브론스키’, 일명 ‘파리넬리’다. 1705년 이탈리아 풀리아주 안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12세가 되던 해 작곡가였던 아버지 살바토레에 의해 카스트라토가 됐다. 이후 니콜라 포르포라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외모까지 아름다웠기에 금방 후원자도 생겼다. 예명 ‘파리넬리’는 후원자였던 ‘파리나’ 형제의 성을 따른 것이다. 그가 누린 인기와 부는 너무도 대단해 공연을 위해 도시를 옮기는 그의 마차 행렬은 항상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졌다고 한다.
비록 비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든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카스트라토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일종의 음악적 사조와 같았다. 파리넬리는 그 정점에 선 가수로서 ‘아름다운 목소리는 물론 완벽한 감정 표현, 큰 공명과 폭넓은 음역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음악적 라이벌 관계였던 작곡가 헨델이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라 폄하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히려 파리넬리의 가창이 얼마나 출중했는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증언으로 남았다. (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