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조만간 여의도로 떠난다. 지도에 없던 길을 가겠다며 취임한 지 1년5개월.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서 경제수장으로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모든 현안을 짊어지고 '장구 치고 북을 친' 그는 식어가는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다만 돈을 풀어 경기 급랭을 막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리 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하기에는 내상이 너무 깊고 재임 17개월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 경제부총리는 등장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세월호와 함께 밑바닥까지 침잠해 있던 경제를 전례 없던 확대 재정정책으로 깨웠다. 그는 경기 부진의 요인을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저성장-저물가-경상수지 과다 흑자의 문제로 거시경제의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할 경우 '축소 균형의 늪'에 빠져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경고를 던지기도 했다.
최 부총리는 기존의 전통적인 경제정책으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봤다. 41조원+α에 이르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 가계소득 증대 세제 3종 세트 같은 창의적인 정책도 다수 내놨다. 전임 정부부터 금기시돼온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한여름, 겨울옷'이라며 한방에 풀었다. 가장 큰 성과는 경제팀이 무기력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화끈한 정책이 효과를 내면서 성장률은 올해 1·4분기 0.8%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곧이어 터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분위기를 일시에 냉각시켰다. 최경환 부총리의 스텝이 본격적으로 꼬인 것도 이때부터다.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대응이라며 한계가 있다고 외면했던 정통 경제정책 카드를 하나둘씩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개별소비세 한시 인하 카드가 대표적이다. 그의 재임 기간 기준금리는 총 네 차례 인하돼 2.5%에서 1.5%까지 떨어졌다.
주요 지표가 보여주듯이 경제는 생각만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인위적인 내수 부양으로 지난 3·4분기 성장률을 6분기 만에 1%대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갈 길이 멀다. 그래서인지 최 부총리와 경제팀에 대한 평가가 예전 같지 않다. 기대보다는 앞으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부동산은 띄웠지만 가계부채는 1,200조원을 넘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쓸 정책카드도 대부분 소진했다. 수출은 11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목표로 삼았던 연 3%대 성장률은 물 건너갔다. 지난 17개월 동안 수많은 정책들이 그의 입에서 시작되고 손끝에서 마무리됐지만 외과적 수술보다는 단기 부양을 위한 백화점 식 대책을 쏟아낸 것 아니냐는 혹평도 나온다. 올해 초 연말정산 파문은 뼈아프다. 국민들에게 고개까지 숙이며 직접 수습하려 했지만 야당에 밀려 하루 만에 없던 일로 되돌렸다. 보완 대책을 소급 적용하기로 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최 부총리가 재임 후반기 주력한 정책은 노동개혁. 그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입법 과정에서는 마감시한까지 제시하며 최후통첩을 날려 노동계를 압박하는 수완도 발휘했다. 그러나 노동개혁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다. 특히 4대 개혁 중 교육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용두사미가 됐다.
여의도로 돌아갈 때가 돼서일까. 경기가 그의 뜻대로 살아나지 않고 있어서일까. 담뱃값 2,000원을 올리면서 올해 초부터 금연해온 최 부총리가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가 차기 경제팀에 남긴 수많은 과제들이 쌓여 있는 만큼 여의도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도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