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심판들이 꿈꾸는 최종 목표입니다.”
출국을 며칠 앞둔 핸드볼 이석(31) 심판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지난 3월 이석 심판은 파트너 구본옥(30) 심판과 함께 국제핸드볼연맹(IHF)으로부터 리우올림픽 심판으로 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2012년 핸드볼 국제심판(International referee) 자격증을 취득하고 불과 4년 만에 꿈의 무대를 밟게 된 것이다.
이석 심판과 핸드볼 인생은 2004년 시작됐다. 그는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출신으로, 학교 핸드볼부에 가입하며 핸드볼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한국 핸드볼이 세계무대에서 편파판정 불이익을 받는 것을 지켜보게 됐고, 핸드볼 심판의 길을 걷게 됐다.
2008년 국내 심판 자격증을 취득한 이석 심판은 2011년 국제 아시아 대륙 심판(Continental referee), 2012년 국제 심판(International referee)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비교적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2015 카타르 세계남자선수권대회, 2015 올림픽아시아남자예선전 등 주요대회에서 심판 경력을 쌓았다. 현재 국내에서 국제핸드볼연맹 국제심판은 이석-구본옥 심판조와 여자 심판인 이은하(28)-이가을(26) 둘 뿐이다. 화려한 커리어에 대해 이석 심판은 “운이 좋았고, 시기도 잘 맞아 떨어졌다”며 겸손하게 답했다.
올림픽 심판은 경기종목국제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이 국적과 인사 고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배정한다. 심판 개인의 지원이나 신청을 받는 형식이 아니다. 핸드볼 종목 역시 국제핸드볼연맹(IHF)으로부터 지명을 받아야만 올림픽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올림픽의 경우 총 16조의 심판이 초청받는데, 그 중 통상적으로 아시아 대륙에 2장의 티켓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16강전 이상의 주요 경기 심판은 어떻게 배정되는 것일까? 이석 심판은 “예선전에서부터 심판으로써 좋은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제 주요 대회에서 16강전 이후로는 유럽 출신 심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는 “핸드볼 강국이 대부분 유럽이기 때문에 유럽 심판들이 좋은 경기 경험이 많다”며 “협회와 유럽 심판의 신뢰관계도 두터운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 아시아에는 수준급의 핸드볼 국제 심판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몸싸움이 심하고 격렬한 핸드볼 종목 특성상, 선수나 코치진이 판정에 대한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인 판정이 정확하더라도 선수들에 따라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석 심판 역시 첫 국제대회였던 2012년 브라질 세계대학선수권에서 폴란드 대표팀 감독의 강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석 심판은 “‘놀러왔냐’, ‘심판 관둬라’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진짜 잘못해서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은 건 아닌지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악연으로 얽힌 폴란드 감독을 다시 만난 것은 지난 3월. 올림픽본선 티켓이 걸린 최종예선전에서 이석 심판은 또다시 폴란드 경기의 심판을 맡았다. 게다가 한 경기라도 지면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기에 선수와 감독 모두 어느 때보다 예민한 순간이었다. 이석 심판은 편정에 괜한 딴죽을 거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당시 2점 차로 폴란드가 졌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폴란드 감독이 다가와 ‘심판을 너무 잘 봐줘서 고맙고 오늘 승부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그 말을 듣는데 느낌이 정말 새로웠다. 핸드볼 심판으로써 한 단계 발전하는 순간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핸드볼 종목에 한국인 심판이 파견된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16년 만이다. 이석 심판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며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석 심판은 지난 2일 리우로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