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20대 초중반의 젊은 궁사들로 구성된 남자양궁대표팀은 활의 본체와 화살 깃 색깔이 모두 금메달과 닮은 노란색이다. 이번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체전 멤버는 4년 전 런던올림픽 동메달 때와는 전원 얼굴이 달라졌지만 후배들은 남자양궁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활부터 금으로 통일했다.
황금색은 활을 잡는 선수들에게까지 입혀졌다. 7일(한국시간) 신들린 퍼펙트 행진을 곁들이며 한국 선수단에 리우올림픽 첫 금메달을 선사한 김우진(24·청주시청), 구본찬(23·현대제철), 이승윤(21·코오롱엑스텐보이즈)은 황금조합 삼총사다. 김우진은 4년 전 런던올림픽 대표팀 탈락의 아픔을 곱씹은 승부사, 구본찬은 분위기 전환 담당인 넉살꾼, 이승윤은 긴장된 상황에서 더 강한 강심장이다.
이날 브라질 리우의 삼보드로무경기장에서 치러진 리우올림픽 남자단체전 결승에서 한국은 세트 점수 6대0(60대57 58대57 59대56)으로 미국의 손목을 꺾었다. 올림픽 단체전 3연패 뒤 런던에서 동메달에 그치고는 8년 만에 다시 금맥을 이은 것이다. 4년 전 선배들이 미국에 당했던 준결승 패배도 깨끗하게 설욕했다.
‘승부사-넉살꾼-강심장’ 트리오, 신들린 퍼펙트 행진
1세트에서 한국은 6발 모두를 10점에 꽂으며 2점을 가져가 미국을 주눅 들게 했다. 2세트 28대27 상황이 승부처였다. 미국은 먼저 3발 모두를 10점에 맞히며 반격에 나섰지만 한국이 곧바로 10점 3발로 받아치자 방법이 없었다. 한국은 3세트를 손쉽게 챙기면서 태극기 세리머니를 펼쳤다. 앞서 4강도 6대0, 8강도 6대0이었다.
에이스 김우진은 지난 5일 개인전 예선에서 72발 합계 700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울 때부터 심상찮더니 단체전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고 제 역할을 해냈다. 김우진은 누구보다 이번 올림픽을 기다렸다. 2011년 세계선수권 2관왕 뒤 런던올림픽 후보선수 4명에 들었지만 올림픽 전 마지막 월드컵 성적에서 밀려 최종 3명에 포함되지 못했다. 어찌나 분했던지 런던올림픽 기간에는 TV 자체를 켜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전국체전에서 60명 중 55위에 그치는 등 슬럼프를 겪기도 했던 김우진은 마음을 다잡고 연습벌레로 변신했다. 하루 400~600발을 쏘며 자신을 몰아붙인 결과 지난해 코펜하겐세계선수권 2관왕, 리우프레올림픽 개인전 1위를 차지하며 세계 1위에 복귀했다. 숫자 4는 무조건 피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컸던 김우진은 4월 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리우행을 결정지으며 ‘4’에 얽힌 아픔을 날려버렸고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짜릿한 보상을 받았다.
김우진을 일으킨 게 한(恨)이라면 구본찬의 모토는 즐기는 양궁이다. 결승에서 6발 모두를 10점에 넣어버린 ‘퍼펙트맨’ 구본찬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주 아름다운 밤”이라며 분위기를 돋웠다. 바로 시작되는 개인전을 언급하면서 “오늘만 즐기고 내일 눈을 뜨면 적이고 경쟁 상대”라고 했다. 자원봉사자에게 장난스럽게 메달 케이스를 주문한 그는 “셋 다 금메달을 받았으니 헷갈릴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승윤은 막내이면서도 가장 마지막 주자로 나서는 중책을 맡았다. 박채순 남자대표팀 감독은 이승윤의 강심장을 믿었고 막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강원체고 3학년 때 대표 평가전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임동현을 꺾고 1위를 차지했던 이승윤이다. 2014년 8월에는 세계 랭킹 1위에까지 올랐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바람 때문에 우리가 10점을 받을 걸 8점을 받으면 상대는 7점이다. 우리가 세계 최고인데 우리가 8점이면 상대는 6~7점’이라고 말해줬다”며 “내가 주문한 것은 ‘즐기라’는 것 하나뿐이었다”고 밝혔다.
/리우데자네이루=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