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알려진 국채의 투자 리스크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중앙은행들의 잇단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으로 시장 왜곡이 심해지면서 손실위험이 없는 안전성이 강점이던 국채투자가 ‘폭탄 돌리기’와 같은 위험을 안게 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도입한 대규모 양적완화(자산매입) 프로그램과 초저금리의 여파로 채권시장이 이상해지고 있다며 연일 치솟는 가격에도 국채투자 위험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우선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이자수익이 없는 제로쿠폰 국채발행이 늘어나면서 만기 때 투자자가 떠안게 될 잠재적 손실액이 커지고 있다. 전통적 제로쿠폰은 이자가 없는 대신 액면가보다 큰 폭으로 할인된 가격에 발행되기 때문에 투자자는 만기 때 매입가와 액면가의 차액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낳은 ‘신종’ 제로쿠폰의 경우 이자가 없는데다 액면가보다 높은 금액에 거래되는 경우도 많아 최종적으로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국채 가격이 오르면 투자자들은 유통시장에서 매입가보다 더 비싸게 국채를 팔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만기 때까지 이 국채를 갖고 있는 투자자는 그만큼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정평이 난 독일 국채의 경우 이자를 받을 수 없는 제로쿠폰 국채발행 규모가 1,600억유로(약 196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가 이어지면 제로쿠폰 국채는 더 늘어날 것이고 이는 비싸게 국채를 매입해 대규모 손실을 보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WSJ는 수익이 보장되지 않은 채 시장에서 더 비싼 값에 팔기 위해 투자하는 채권은 더 이상 전통적인 채권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각국의 물가수준이 회복돼 중앙은행들의 통화완화 정책이 일단락되고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앞으로 금리가 2011년 수준으로 회복될 경우 투자등급 국채를 매입한 투자자들이 입게 될 손실이 전체 투자액의 10%인 3조8,000억달러(약 4,180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고 포브스는 이날 전했다. 유럽중앙은행(ECB) 물가 목표치인 2%를 달성하면서 금리가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회복된다면 이미 10년물까지 마이너스 금리로 떨어진 독일 국채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20%가량의 자본손실을 입게 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물론 시장에서는 글로벌 경기둔화로 미국이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물가수준이 중앙은행 목표치인 2%를 달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올 들어 1% 안팎으로 오르고 최근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는 등 일각에서 나타나는 변화 조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피치는 “올해의 극적인 국채금리 하락은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이 전 세계에서 대규모 투자손실 위험을 높였다”며 “금리가 역대 최저수준으로 치달으면서 투자자들이 직면한 금리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는 국채 규모는 11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신경립기자 kls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