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고위공직자가 비리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

FORTUNE’S EXPERT | 신제구의 ‘리더십 레슨’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는 국가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라는 점에서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는 지적이다.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는 국가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라는 점에서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직자의 권력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공정한 혜택을 제공해달라는 국민적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국가권력을 공직자가 사유화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힘 자랑하는 모습만 보면 사람과 동물의 구분이 잘 안 되는 시절이다. 동물의 세계는 힘이 법(法)이다. 사람의 세계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힘있는 사람이 힘써야 할 곳에 힘쓰지 않고 힘쓰지 말아야 할 곳에 힘쓰면 다른 사람이 힘들어지는 법이다. 일부 고위공직자들의 부조리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파렴치한 행위에 비해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당당하다. 그들도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한결같은 그들의 ‘동물다움’ 에 힘없는 사람들은 또 한번 좌절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잘못한 걸까? 국가권력을 제멋대로 동원하여 사적 재산을 축적한 죄, 국민을 대상으로 모욕적인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낸 죄는 분명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테러에 가깝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장 큰 죄목은 비싼 세금을 내면서 국가에 의존하고자 했던 선량한 국민들의 소박한 바람을 조롱하며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럴 만한 그 어떠한 권한과 권리도 국민은 허락한 적이 없다.

공직자의 권력은 비겁한 강자들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공정한 혜택을 제공해달라는 국민적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국가권력을 공직자가 사유화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추한 꿈을 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초심(初心)은 나름대로 국가를 위한 원대한 포부와 헌신이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변질된 걸까? 출세를 위한 성공모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함정에 빠졌기 때문은 아닐까?

그 어려운 공부를 하고 힘겨운 경쟁에서 승리했던 그들이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외면하고 스스로 부조리의 당사자로 전락한 안타까운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일부 엘리트 고위공직자가 스스로 부조리의 함정에 빠지는 몇 가지 원인과 해법에 대해 생각해봤다.

첫째, ‘사명감 없는 엘리트주의’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코뿔소와 같다. 코뿔소는 강한 힘에 비해 시력이 약하다. 대신 후각과 청각은 발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머리로 고위공직에 올랐지만 사명감을 상실한다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하는가를 망각하고 출세지상주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이 순간 도덕적 판단력은 사라지고 이 세상에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오만함으로 가득하게 된다. 발달된 후각으로 돈 냄새만 따르거나 예리한 청각으로 탐욕의 유혹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자신의 힘과 큰 뿔만 믿고 거침없이 달리다 덫에 걸려버린 장님 코뿔소와 다를 바 없게 된다. 물론 그들의 부조리는 본인의 잘못이 크지만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유사한 선배들로부터 학습된 나쁜 버릇일 수 있다. 그러나 원인 제공자가 누구이든 부조리의 책임은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둘째, ‘중단 없는 탐욕주의’는 굶주린 하이에나와 같다. 닥치는 대로 먹고 남의 것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든다. 뼈까지 먹어 치우는 무서운 식욕의 소유자가 바로 하이에나다. 뜻을 같이하는 무리가 있다면 겁 없이 사자에게도 덤빈다. 누구나 욕심은 있다. 하나를 가지면 두 개를 갖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일 잘하라고 국민이 부여해준 힘을 자기를 위해 쓴다면 엄연한 반칙이다. 그러나 하이에나에겐 원칙과 양심이 없다. 반성은 더욱 없다. 끊임없는 탐욕을 추종하다가 다른 하이에나 땅을 침범하여 집단으로부터 물려 죽거나 사자와 같은 더 위협적인 동물에 의해 죽음을 맞기도 한다. 너무 비슷해서 섬뜩할 뿐이다. 어쩌면 본인도 통제할 수 없는 탐욕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것으로 판단된다. 탐욕은 그만큼 무서운 중독성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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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점검 없는 리더십’은 무리에서 밀려난 늙은 사자와 같다. 사자는 강하다. 그러나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 더 젊고 힘센 사자가 도전해 오면 목숨을 걸고 도전에 응해야 하고 그 결과는 곧 운명이 된다. 리더는 늘 많은 도전을 치른다. 권력은 도덕성과 자기통제도 중요하다. 보통 다른 숫사자가 도전해오면 숫사자 혼자 대응하기도 하지만 존경 받는 숫사자는 새끼 사자를 지키려는 암사자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즉 주변에 협력자가 있다는 의미다. 존경 받지 못한 숫사자라면 위기에 빠졌을 때 모든 도전을 고스란히 혼자 이겨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공직사회는 복종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리더십에 대한 브레이크가 없을 공산이 크다. 스스로 절제되고 점검된 리더십을 키우지 않으면 권력남용이란 유혹에 쉽게 노출되고 돌이킬 수 없는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암사자의 사냥감을 빼앗고 새끼들을 방치하며 그늘에서 잠만 자는 숫사자에게 협력자는 없다. 자신의 권력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착각하거나 자신을 방해할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는 자만 가득한 숫사자의 운명은 적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고립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행여 다른 사자와 싸우다 다치기라도 한다면 사냥도 못하고 굶어 죽기도 한다.

아무 죄도 없는 동물을 비유해서 고위공직자의 부조리를 꼬집으려니 동물들에겐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동물은 생존을 위한 것이고 고위공직자의 부조리는 도를 넘는 탐욕을 위한 것이란 점에서 그들의 행태는 동물만도 못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동물에 대한 죄책감이 다소 해소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고위공직자가 스스로 부조리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미리 자기만의 정의로운 원칙을 정하고 일관되게 그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부조리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힘을 키우는 과정에서 변질되기 때문에 초기에 세웠던 원칙은 변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운이 좋아 훌륭한 멘토를 만나서 힘겹게 훈련을 받거나 절제의 지혜를 배울 기회를 갖는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또한 소용없는 일이다.

결국 가장 강력한 방법은 교훈을 남기는 거다. 현재 드러난 고위공직자의 부조리를 한치의 오해와 의심을 남기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고 가장 처절한 방법으로 벌을 주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당사자의 완벽한 변신은 기대할 수 없다 할지라도 미래의 고위공직자 부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강한 교훈을 이제는 남겨야 한다. 만약 그래도 피할 길은 있었고 이 순간은 곧 지나갈 것이라는 식의 잘못된 판단으로 제 식구 감싸기를 반복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곧 동물의 세계와 동등해진다. 사람의 마스크를 쓴 동물이 가득한 곳 말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좀 더 사람다운 DNA를 유산으로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신제구 교수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민대학교 리더십과 코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리더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신제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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