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의 카리오카 아레나3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태권도 여자 49㎏급 결승에서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를 7대6으로 물리치고 태권도에서 첫 금맥을 캔 김소희는 어릴 적 걸핏하면 코피를 쏟곤 하던 약골이었다.
충북 제천의 ‘약골 소녀’ 김소희는 기계체조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태권도 도복을 입었다. 제천동중 1학년 때 선수의 길을 택한 김소희는 서울체고 재학 시절부터 경량급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산소통’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강철 체력으로 변모했다.
고교 무대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웠던 그는 2011년 경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46㎏급에서 정상에 올랐는데 선수 생활 시작 6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2013년 멕시코 세계선수권에서 같은 체급 2연패를 달성하고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승승장구했다. 경주 세계선수권 당시 16강에서 왼손 약지가 부러진 채로 남은 경기를 계속 뛰어 우승했던 일화는 그의 승부근성을 보여준다.
빼어난 실력에도 올림픽 출전은 기약할 수 없었다. 8체급 모두 출전자를 낼 수 있는 세계선수권이나 아시안게임과 달리 올림픽은 2012런던대회까지 국가당 남녀 2체급씩 총 4체급에만 출전이 허용됐다. 한국의 전략 체급은 전통적으로 57㎏급과 67㎏급, 67kg 초과급이었기에 김소희는 도전 길이 아예 막혀버린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리우대회부터는 체급별 상위 6위 이내 선수라면 한 나라에서 1명씩 최대 8체급 모두에 출전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김소희에게도 일단 길은 열렀다.
하지만 리우행 확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지난해 12월 멕시코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당시 올림픽 랭킹 7위였던 그는 한 경기만 이겼으면 6위 이내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첫 경기에서 세계 최강 우징위(중국)에게 0대5로 완패했다. 7위로 마감했으나 이 체급에서 6위 안에 태국 선수가 2명이 포함된 덕에 기적적으로 브라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김소희는 우여곡절 끝에 오른 올림픽 무대에서도 드라마를 연출했다. 8강전이 가장 큰 고비였다. 파니파크 옹파타나키트(태국)에 2대4로 끌려가다 마지막 3라운드 종료 4초를 남겨놓고 머리 공격에 성공해 6대5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준결승전에서는 야스미나 아지즈(프랑스)와 3라운드까지 0대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골든 포인트제로 치러지는 연장전에서 36초를 남겨놓고 몸통 공격에 성공해 1대0으로 이겼다. 결승전도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3라운드 초반 6대1까지 리드하던 김소희는 이후 소극적인 경기 탓에 경고로만 3점을 내줘 7대6으로 쫓겼다. 경기 종료와 함께 김소희가 매트 위에 넘어지자 보그다노비치 측에서 경고를 줘야 한다고 어필했다. 이 경기에서 9개의 경고를 받은 그는 경고 하나만 더 받으면 대회 규정상 감점패를 당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비디오 확인 끝에 결국 우승이 확정되자 김소희는 비로소 활짝 웃었다.
경기장을 직접 찾은 김소희의 부모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고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제천동중 체육관에서 밤샘 응원을 펼친 김소희의 가족과 모교 후배들은 함성과 환호로 축하했다. /리우데자네이루=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