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경제학 용어가 하나 있다.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라는 단어다. 아마도 일반 대중에게는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가장 친숙해진 경제학 용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당시 사태의 한 원인이었던 은행권의 부실대출과 관련해 언론에서 은행 경영진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이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도덕적 해이란 경제학에서도 꽤 전문 영역에 속하는 학술 용어다. 이는 A(흔히 ‘주인’이라고 한다)가 B(흔히 ‘대리인’이라고 한다)에게 자신을 대신해 어떤 행위나 의사결정을 해줄 것을 위임했을 때 B가 위임자인 A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A와 B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사회 현상을 일컫는다.
예컨대 주주들이 최고경영자(CEO)에게 회사 경영을 위임할 때에는 회사 가치, 즉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해줄 것을 기대하나 CEO는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 국민이 정치인에게 국가 경영을 위임할 때에는 국민 후생의 증진을 최우선시할 것을 기대하나 정작 정치인들은 자신의 영달을 우선시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이 같은 현상에 도덕적 해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붙은 것은 17세기 영국의 한 보험회사 내부 문건에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보험회사들은 피보험자의 주택이 화재로 전소됐을 때 이를 전액 보상해주는 완전보험(full insurance)을 판매했다. 이를 산 많은 피보험자는 통상 기대되는 기본적인 화재 주의의 의무조차(이것이 보험회사가 피보험자에게 암묵적으로 위임한 행위였다) 게을리했으며 그 결과 화재 발생 빈도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주택이 낡았거나 내부구조가 맘에 들지 않을 경우 스스로 방화하는 경우도 꽤 있었던 모양으로 당시 보험회사들은 이를 사회윤리 위기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라는 표현은 그다지 적절한 언어 선택이 아니었다. 이 같은 표현은 자칫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의 원인이 피위임자인 대리인의 도덕성 결여에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함으로써 대리인의 윤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게 하는 오류를 야기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부 경제학자들이 이를 도덕적 해이가 아닌 ‘감춰진 행위의 문제(hidden-action problem)’로 고쳐 부를 것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완전보험을 구매한 피보험자가 자신의 낡은 집에 불을 놓는 행위는 비도덕적일 수는 있으나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한 실질적 임면권이 주주가 아니라 정치권에 있는 상황에서 거액의 대출을 결정할 때 사업 수익성보다 정치권의 압력을 우선시한 외환위기 당시 은행 경영진의 행위는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문제의 근원은 대리인의 도덕성 유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적절히 통제할 시스템의 미비에 있었던 것이다.
17세기 영국 보험회사들은 비록 이름은 도덕적 해이라고 붙였으나 사태의 원인이 피보험자의 비도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보험의 불완전성에 있음을 깨닫고 이후 완전보험의 판매 요건을 강화하거나 피보험자가 피해액 일부를 분담하는 공동보험(co-insurance)을 판매하는 쪽으로 판매 전략을 수정해나갔다.
약 20년 전 우리 사회는 청문회다 뭐다 해 은행 경영진과 책임 있는 정치인 몇 명을 국회에 불러다 놓고 그들의 비도덕성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한 적이 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대부분의 금융권 고위직에 대한 실질적 인사권은 정부 및 정치권이 틀어쥐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대우조선해양 부실 대출에 대한 청문회가 조만간 국회에서 열리게 될 모양이다.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누가 더 도덕적으로 해이한가.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미시경제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