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인턴실태보고서 "니들이 인턴을 알아?"



사무실에서 머리카락 휘날리며 회의 자료 만들고, 하반기 히트 아이템을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 하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에 상상했던 모습은 그저 ‘이상’일 뿐이다. 현실에선 ‘정규직’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얘기도 못하고, 자신의 의견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제대로 일을 배우고 싶어서 회사 문을 두드렸지만 실망만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날의 반복이다. 대한민국에서 ‘인턴’으로 산다는 것. 청년 실업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2016년 오늘, 이 땅에서 인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본격적인 하반기 채용 시즌을 맞아 올 여름 방학 인턴 생활을 경험했던, 취업준비생들의 눈과 입을 통해 ‘한국 기업 문화를 바라보는 인턴의 4가지 시선’을 들여다봤다.

■인턴들이 겪은 4가지 부당한 시선






<시선 1> 일회용 건전지형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쓰고, 다시 그 자리에 새 배터리를 끼워 기계를 돌린다. 최근 방송사에서 인턴 생활을 마친 일회용(26·가명)씨는 본인의 모습이 딱 ‘일회용 건전지’ 같다고 말한다. 평상시 규모가 작고 복지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비전 있는 회사를 원했던 만큼 그는 입사한 회사에서 비전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름대로 큰 포부를 안고 입사를 했고, 새로운 업무를 부여 받았다. 하지만 매일 아침 트렌드에 민감하게 이슈를 쫓아야 하는 업무 특성상 젊은 인턴들의 아이디어와 손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졌고,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이 인턴에게 할당됐다.

회사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성과를 내는 건 인턴 몫이 됐지만 회사는 인턴들을 채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인턴을 뽑는 방식으로 빈 자리를 채웠다. 일은 일대로 많고, 업무 지속성은 보장받지 못한 채 정규직의 손과 발이 돼야 하는 상황 속에서 상실감을 느끼는 인턴들. 그는 이 문제가 비단 자신의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기업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꼬집는다.



<시선 2> 볼보이형

간절하게 소망했던 경기장 리그에 들어왔지만 그라운드 선수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고 볼을 주우면서 그저 하염없이 경기장을 바라보기만 한다. 최근 한 부품회사에서 인턴을 마친 김춘석(27·가명)씨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감정이다. 그는 시간만 때우는 인턴이 아닌 실제로 일을 배우는 인턴을 상상하며 입사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드라마 장면처럼 선배들과 회의실에 모여 그날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활발하게 나누고 향후 사업 계획이나 전략 수립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주어진 일은 선배들과 철저하게 분리된 채 단순하고 반복적인 잡일뿐이었다. 김 씨는 “조직에 애착도 있고, 일도 잘 배우고 있다고 스스로 자신감도 있었지만 나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 회사의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며 “회식 자리에서도, 일 적인 부분에서도 늘 분리된 상태로 정보 역시 가로막혀 갑갑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시선 3> 모나미형


책상 위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모나미 볼펜처럼 꼭 필요한 순간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티도 안 나고 개성도 없어 빛날 틈 없는 존재. 색깔 펜처럼 개성을 갖고 돋보일 생각까지는 없지만 단순한 일만 반복해서 시킬 땐 본인이 쓸모없는 부속품으로 느껴져 자부심이 떨어진다. 열정을 보이기 위해 시키는 일은 열심히 하지만 다양한 업무나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접해볼 기회는 거의 없어 ‘인턴’이란 지위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각각의 일들은 쉽고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거지만 이런 업무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야근은 피할 수 없다. 단순한 일만 담당하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존재지만 쉽게 여기는 분위기가 싫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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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4> 희망고문형

모집 공고에서 공지했던 바와 같이 정규직 채용이 어려울 거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애초에 회사에서 일할 기간을 약속하고 들어왔고, 채용 전제형 인턴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하는 ‘조금만 더 열심히’, ‘조금만 더 잘하면’ 정규직 전환도 될 수 있다는 말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희망을 심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 희망이 헛된 실체를 가지고 있기에 감정은 더욱 소모된다. 결국 인턴 계약 기간이 끝나 회사와 나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을 땐 배신을 당한 것 같은 불쾌한 감정만 남게 된다.



■인턴 생활 후 부정적 직업관만 생기는 취업준비생들

사회 생활에 대한 열정을 갖고 회사에 들어오는 인턴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이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이들이 터놓는 불만을 투정 정도로 여길 뿐 이들이 왜 이렇게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회사를 바라보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최근 서울경제신문이 취업 포털 인크루트와 함께 ‘당신의 인턴 경험을 알려주세요’란 주제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09명 중 약 72%가 ‘인턴 생활을 통해 오히려 부정적인 직업관을 갖게 됐다’고 답했다. 부정적인 직업관을 갖게 된 이유로는 ‘업무를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알아서 배우라고 해 직업 체계의 문제점이 보인다’가 24%, ‘진실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렵다’가 17%로 나타났다.



인턴들이 기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데는 기존에 회사가 생각하는 노동의 상식과 이제 막 입사한 인턴들이 갖는 노동의 상식 사이의 격차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73%의 응답자가 ‘현재 한국의 인턴은 질이 낮다’는 항목을 선택했다. 제약회사에서 인턴을 마친 김인영(24)씨는 “무조건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해 물건을 생산하려는 기성의 상식이 조직을 지배하고 있었다”며 “획일화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겁게 일할 때 기존의 틀도 깨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인턴들을 이방인 취급하는 시선을 느끼는 게 힘들다. 함께 일을 한다는 인식보다는 허드렛일, 잡일을 하는 친구들이라고 보고 생각하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할 때면 기분이 나빠진다. 우리의 업무 생산성이, 아이디어가, 능력이 낮을 거라고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외국계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던 경우는 매우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섬유회사에서 인턴을 마친 조성신(25)씨는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 선발했다. 근무 시간이 짧은 ‘파트 타이머’도 정직원과 똑같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한다. 월급도 분 단위로 재고, 대체 휴가나 월차도 눈치 없이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인턴을 채용하는 회사가 법적, 제도적으로 고질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 회사별로 다양한 형식의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 교수는 “한국의 제도는 법적, 제도적으로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뿌리 깊게 경직된 구조 속에서 비정규직 인턴들은 인권의 측면, 트레이닝적인 측면에서 가장 취약한 구조에 놓여있다. 특히 한국 기업의 경우는 인턴이라는 제도가 ‘업무’ 중심의 사회 입문이라기 보다 기업이 잘 착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김대선 인크루트 팀장은 “요즘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많은 회사들이 경력자를 찾고 있다. 구직자들한테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첫번째 창구가 ‘인턴’인데 문제는 인턴을 악용하는 것이다. ‘인턴’이라는 타이틀을 준 채 알바 만도 못한 일들을 시키고 있다”며 “회사에서 어떤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을 시키지 못하더라도 인턴에게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해 경험을 쌓이게 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이 될 수 있는 인턴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수현기자·정승희인턴기자 value@sedaily.com

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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