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자프로골프의 대세 박성현(23·넵스)은 골프볼에 마크를 할 때 은색으로 라인을 그린다. “예쁘기도 하고 다른 선수들은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은색을 선호한다”는 설명. 스스로 붙인 별명인 ‘남달라’와 잘 어울린다. 볼 번호는 ‘더 잘 맞는 느낌이 들어서’ 5·6번을 주로 쓴다.
골프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수들의 개성이 보인다. 선수들은 자신이 쓰는 볼을 동반 플레이어의 볼과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대부분 볼에 표시를 해놓는다. ‘시크하게’ 점만 찍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정성 들여 그림을 그려넣는 선수도 있다.
박결(20·NH투자증권)은 태극마크처럼 보이게 빨간색 점과 파란색 점을 위아래로 찍는다.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켜온 볼 마크다. 그는 2014인천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퀸이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볼 로고 위에 왕관을 그려넣는 배선우(22·삼천리)와 반대로 이정민(24·비씨카드)은 검은 점 3개만 찍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늘 그랬다.
‘퍼트의 달인’ 이승현(25·NH투자증권)은 나만의 퍼트라인 정렬법이 있다. 볼에 새겨져 있는 얼라인먼트 라인을 홀 방향과 일렬로 맞춰 퍼트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승현은 달인답게 뭔가 다르다. 그는 얼라인먼트 라인 대신 볼 로고를 이용하는데 로고를 퍼트라인과 일직선이 아니라 수직이 되도록 놓고 로고에다 퍼터페이스를 평행으로 맞춘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상금 1위 박상현(33·동아제약)의 볼은 아예 ‘C1’ 마크가 찍혀져 나온다. 그의 아들 이름이 시원이다. 기독교인인 대상(MVP) 포인트 1위 최진호(32·현대제철)는 볼에 십자가를 그려넣고 축구광 이동민(31·바이네르)은 별을 새긴다. 이동민은 “월드컵 우승하면 유니폼에 별 하나씩 새기지 않나. 저도 매년 3승씩 하자는 의미로 볼에 별 3개를 그려넣는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숫자 4가 찍힌 볼은 웬만해선 피한다. 박상현은 1라운드에 1번, 2·3라운드에는 2·3번 볼을 쓰지만 4라운드에는 4번 대신 1번 볼을 다시 꺼낸다.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상금 2위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도 “3번과 2번 볼 각각 3개와 1번 볼 2개를 챙긴다. 대회 때 4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숫자 4를 좋아해서 4번 볼을 선호한다”는 배선우처럼 예외도 있다.
볼 마크는 보통 대회 전날이나 휴식일에 한다. 대회를 앞두고 각오를 다지는 의미도 있는 셈이다. 이승현은 “전날 저녁에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마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