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장관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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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1995년 11월, 예기치 않은 악재가 터져 나왔다. 에토 다카미 당시 일본 총무처 장관이 “일본의 한반도 식민통치는 불가피했으며 이 기간 중 학교를 세우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망언을 한 것. 국내 여론은 크게 악화했고 정상회담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에토는 결국 유감 표명과 함께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유감과 사임이 진심일 리 없었다. 지역구로 내려가 “한일합방은 양국이 체결한 국제조약이며 식민통치가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은 실언도 망언도 아니다”며 그의 본심을 재확인하는 데는 두 달이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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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때를 구별하지 못하고 본심을 드러내 설화(舌禍)를 겪는 공직자가 어디 일본에만 있을까. 김대중 정부 시절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은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신 뒤 “방송 토론을 하다 졸릴 때 여성방청객의 스커트 안 속옷을 보면서 잠을 깬다”고 했다가 여성비하 논란에 시달려야 했고 1995년 ‘충청도 핫바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김윤환 당시 정무장관의 발언은 충청 민심을 폭발 직전까지 끌고 갔다. 포르투갈에서는 환경부 장관이 한 세미나에서 신장병 환자가 알루미늄 중독으로 사망한 것을 빗대 “죽은 환자 시체를 용광로에 넣어 알루미늄으로 정련해낸다”고 농담을 했다가 인명 경시 논란에 휩싸이며 장관직을 그만둬야 했다.

그간 수많은 사례들 만으로는 교훈을 얻을 수 없었을까. 김재수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청문회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모함과 음해가 있었고 흙수저 출신이라 무시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에 올리고 기자들에게도 “한 줄 한 문장도 틀린 것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청문회 내내 ‘송구하다’는 말을 달고 살더니 장관이 되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나 보다. 악어의 눈물은 결코 참회가 아닌 위선의 눈물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혜안은 역시 틀리지 않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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