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DNA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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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4월25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단 2장짜리 논문이 실렸다. 제목은 ‘핵산의 분자구조:DNA의 구조’. 유전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물질인 DNA가 바깥은 뼈대로, 내부는 염기서열을 담은 이중 나선형 구조로 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글은 짧았지만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저자인 미국의 분자물리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에게는 생명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발견은 여성 생물물리학자인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X선을 이용해 DNA 분자 구조를 찍지 않았다면, 또 그 연구 결과를 왓슨과 크릭이 무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20세기 이후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이렇게 찜찜하게 이뤄졌다.


봉인 풀린 생명의 신비는 많은 변화를 동반했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을 만들고 일부나마 암의 원인도 규명했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98.4% 같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요소는 단지 1.6%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의미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인류를 ‘제3의 침팬지’라고 지칭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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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DNA 구조를 발견한 것이 무조건 긍정적이라 할 수는 없다. 영화 ‘아일랜드’에서처럼 개인의 DNA를 이용해 복제인간을 만들고 상품화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미래학자 제임스 캔턴이 저서 ‘극단적인 미래 예측’에서 장래 개개인을 위협할 요소 중 하나로 개인 DNA 도둑을 지목한 것이나 직장에서 DNA 분석 자료를 활용하는 등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캔턴의 경고가 현실화하는 것일까. 이탈리아 연구소에서 보관 중이던 사르데냐 장수촌 주민 1만4,000여명분의 DNA 샘플이 사라져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아 훔친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개인의 생체정보가 도둑의 표적이 될 만큼 중요한 재산이 됐다는 사실이다. 갈수록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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