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우리은행 민영화에 거는 기대

박태준 금융부장

관치에 성장세 꺾였던 우리은행

저력에 부합하는 새 주인 만나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길



지난 1899년 1월29일 대한천일은행의 첫 주주가 된 34인이 모였다. 이날 초대 행장 등 임원과 업무 분장을 결정한 이 은행은 일주일 후 부동산 담보대출을 시작으로 은행 영업을 시작한다. 황실 자금인 ‘내탕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은 이렇게 출범했다. 이후 수년 동안 이 은행은 국내는 물론 일본과 청나라의 상인들에게 무역금융을 제공하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다.

하지만 대한천일은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1905년 일본이 주도한 ‘화폐정리사업’으로 금융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일시적인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가 1906년에 영업을 재개했고, 1910년 국권을 잃은 후 이듬해 조선상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한일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한빛은행’으로 재출범했고 2001년 예금보험공사의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돼 이듬해 다시 간판을 바꾼 우리은행의 이야기다.


1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받은 멍에 탓에 우리은행은 이후 지금까지 ‘무늬’만 시중은행이었다. 영업전략에 맞춰 탄력적으로 결정됐어야 하는 판관비용률과 1인당 조정영업이익 등은 지난 3월 경영정상화이행약정이 완화될 때까지 십수년간 예보의 통제 속에 있었다. 금융권의 심각한 병폐로 지적돼온 낙하산 인사에서도 우리은행은 자유롭지 못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지낸 정치권 출신 감사에 이어 지난해 초 4명의 사외이사가 정치권 또는 그 주변인으로 채워지자 여론의 비난이 거셌다. 100년이 넘는 전통과 그 역사 속에 쌓인 저력 따위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채 정부의 입김에 언제나 휘둘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주가는 올 초까지 1만원을 밑도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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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시도된 네 차례의 매각 작업은 번번이 무산됐고 이제 다섯 번째 민영화가 추진 중이다. 예보의 지분 51% 중 30%를 4%씩 쪼개 파는 이번 민영 작업에서 초반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투자의향서(LOI) 접수 마감을 사흘 앞두고 10여곳의 투자자가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한화·교보생명과 국민연금·한국투자금융 등이 후보자 물망에 올랐고 이밖에 미래에셋그룹과 우정사업본부·KT 등도 거론되고 있다. 오는 23일 LOI 접수가 마감되고 뚜껑이 열리면 우리은행의 다섯 번째 민영화 시도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지분 매각이 성공해 우리은행이 진정한 민영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은행이 다시 민간의 소유로 돌아와야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 금융시장에서 패권을 다퉜던 조·상·제·한·서가 몰락의 길을 걸었던 원인에 ‘관치’가 있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다. 세상이 달라진 후에도 그 ‘관치’가 자유로운 대형은행은 정상적인 성장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홍에서 벗어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본격적인 리딩뱅크 경쟁을 벌이고 구 외환은행과의 통합에 성공한 KEB하나은행이 추격을 시작했을 때도 정부의 입김 속에 있는 덩치 큰 우리은행은 좀처럼 날갯짓을 하지 못했다. 우리은행이 새로운 주인을 만난 후 안정적인 지배구조 속에 다른 시중은행들과 건강한 승부를 벌일 수 있어야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도 더불어 높아질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다.

대한천일은행의 첫 주주는 관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듬해부터는 상인들의 자본 참여가 두드러졌다. 경성의 상인들과 인천의 객주들이 대한천일은행의 주주 또는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이것이 국내 상공인들이 은행가로 변모하는 계기였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올 연말 우리은행 지분 매각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내년 초 다양한 성격의 과점주주들이 파견한 이사들과 기존 이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은행과 대한민국 금융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그런 장면을 상상해본다. 박태준 금융부장/june@sedaily.com

박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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