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계속되는 여진 공포 경주]"지붕 고치는데 1,000만원 우야노"…아이들은 운동장서 점심

"또 흔들렸어" 황급히 대피…"정상 생활 안돼" 하소연

"관광객 찾는데…내돈으로 우선 수리" 피해 복구 분주

수학여행 예약 90%가 취소…숙박업소·식당 등 울상

21일 경주에서 또다시 규모 3.5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기와 기능공들이 황남동의 한 한옥 음식점 지붕의 깨진 기왓장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경주=장지승기자21일 경주에서 또다시 규모 3.5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기와 기능공들이 황남동의 한 한옥 음식점 지붕의 깨진 기왓장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경주=장지승기자


“흔들렸어. 또 지진이야.”

21일 오전11시53분. 지진 취재를 위해 경주시 황남동의 한옥 음식점에 들어선 순간 기자도 직접 흔들림을 느꼈다. 지난 19일 느꼈던 흔들림보다는 약했지만 1~2초간의 떨림에 식당 내 모든 사람이 일순간 긴장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은 손님들 모두가 황급히 밖으로 대피했다 다시 들어왔다. 6분 후 식당 손님들 휴대폰이 일제히 울렸다. ‘[국민안전처]09.21 1153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0㎞ 지역 규모 3.5 지진 발생 여진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 문자를 확인한 손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느낀 흔들림을 이야기하며 수저를 들었다. 시민 서모(39)씨는 “규모는 처음 지진보다 작지만 여진이 계속돼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능교”라며 하소연했다. 이날 경주 불국사초등학교 학생 300명은 지진이 발생하자 운동장으로 대피한 뒤 급식실이 아닌 운동장에서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


경주시내는 지진 여파로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급한 대로 기와를 다시 올리지만 또 큰 지진이 오면 우야노(어떻게 해야 하나).” 이날 여진의 긴장감 속에 황남동 한옥 음식점의 지붕 수리에 들어간 한 와공(기와 기능공)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지붕 교체에는 크레인까지 동원됐다. 한옥 음식점 주인인 이풍녀(71)씨는 “관광객들이 매일 찾는 곳인데 흉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우선 내 돈으로 지붕을 고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옥 3,300여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근 한옥마을은 670여채가 기와 파손 등의 피해를 봤다. 문제는 평균 1,000만원에 이르는 지붕 보수비용이다. 주민 한모(66)씨는 “돈이 많이 들어가 엄두가 안 나지만 수리를 안 하면 또 안 될 것 같은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주민 이모(41)씨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수시로 흔들림을 느낀다”며 “낮에는 아이와 밖에 나와 있지만 밤엔 달리 갈 곳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간다”고 불안감과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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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동은 신라 역사문화미관지구로 기와가 아닌 자재로는 지붕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다. 지붕이 온전하지 않은 한옥은 물이 스며들어 건물 뒤틀림과 함께 붕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마을 전체를 수리하는 데는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지진이 점심시간 직전에 발생한 까닭에 경주시 구정동 불국사초등학교 학생들이 교내 급식실 대신 학교 운동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이날 지진이 점심시간 직전에 발생한 까닭에 경주시 구정동 불국사초등학교 학생들이 교내 급식실 대신 학교 운동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옥마을 바로 옆 첨성대는 전문가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문화재청이 첨성대를 돌며 꼼꼼하게 육안으로 점검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한쪽에서는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3D스캐너를 이용해 첨성대 전체를 복사했다. 국토정보공사 측은 “2년 전 스캔을 했는데 이번 지진으로 인한 변이량이 있는지 자체적으로 12일 이후 계속 측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첨성대는 12일 규모 5.8의 강진에 최상단의 남쪽 정자석 한 개가 서쪽으로 5㎝ 밀려났고 19일 규모 4.5 지진에는 북쪽으로 다시 3.8㎝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주일 사이 발생한 지진과 여진으로 피해를 본 문화재는 첨성대를 비롯해 모두 80건으로 늘었다.

경주시내 일부에서는 또 다른 걱정이 커지고 있다. 가을 수학여행 시즌을 기대하던 불국사 상가와 유스호스텔이 예약 취소 사태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와 불국사숙박협회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수학여행 예약학교 가운데 90%가 해약해 300여개 학교 4만5,000명이 경주행을 포기했다. 일반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겨 경주 보문단지 내 주요 호텔과 콘도의 경우 12일부터 10월3일까지 예약 취소 객실이 4,081실, 인원은 1만1,160명에 달했다.

불국사 주변 상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63)씨는 “지난해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문에 피해를 봤는데 올해는 지진 때문에 또 걱정”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규모 5.8의 진앙지인 부지1리 마을은 여전히 지진 공포 한가운데 있어 보였다. 마을 당산나무에서 만난 할머니 박모(75)씨는 “지진 날 때마다 다 이곳으로 안 오냐”면서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가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주=장지승기자 jjs@sedaily.com

한국국토정보공사 관계자가 21일 첨성대에서 3D스캐너를 이용해 지진에 의한 첨성대의 변이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경주=장지승기자한국국토정보공사 관계자가 21일 첨성대에서 3D스캐너를 이용해 지진에 의한 첨성대의 변이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경주=장지승기자


울산=장지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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