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독일 베를린에 거주해온 한국인 김기수(가명)씨는 현지 시장 최저가보다 10~20% 정도 비싼 전력요금을 낸다. 석탄보다 발전단가가 높은 신재생에너지나 액화천연가스(LNG) 같은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비용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다. 김씨는 “독일에서는 전력판매 회사들이 제시하는 요금제를 가구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며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비싼 요금제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이처럼 전력 생산·판매시장이 모두 민간기업에 개방돼 있다. 전력판매 시장을 개방하면서 지속적인 요금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 에너지원을 선택해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시민들은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독일 동부 산업도시 드레스덴에서 가장 큰 열병합발전소(CHP) 안내역을 맡은 카를 한스 라이셔씨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값싼 에너지가 제일’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뒤집혔다”며 “대부분의 시민은 친환경에너지 발전소를 늘리기 위해 기꺼이 더 비싼 전력요금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달리 한국은 소비자가 에너지원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길이 막혀 있다. 전력생산 단계에서는 민간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지만 판매는 한국전력이 독점하다시피 한다. 5개 발전공기업과 14개 민간발전사업자가 전기를 생산해 전력거래소에 내놓으면 이를 한국전력이 구매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구조다.
이뿐 아니라 석탄·원자력·신재생·액화천연가스(LNG) 중 어떤 에너지원을 우선순위에 놓을지와 관련해서도 무조건 가격에 기준을 두고 있다. 친환경에너지 사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내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많은 경우를 제외하면 발전단가가 싼 석탄과 원자력부터 발전기를 돌리도록 유도하고 있어 신재생·LNG는 설비를 갖춰놓고도 놀리는 경우가 많다”며 “친환경에너지를 육성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소비자들에게 에너지원을 선택할 권리를 주면서 발전사업자들의 안정적 경영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드레스덴=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