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험

[시각] 고령사회와 보험의 역할

정영현 금융부 차장

생활산업부 정영현생활산업부 정영현




지난 1963년 일본 노인 153명이 국가로부터 순은으로 만들어진 술잔을 선물 받았다. 은잔을 받은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단지 태어나 백 살이 넘도록 살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장수 노인’이 국가 복지 및 건강 정책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축하’를 결정했고 이때부터 매년 만 100세가 되는 노인들에게 은잔을 만들어 선물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달 19일 경로의 날을 기점으로 장수 축하 선물을 크게 축소했다. 순은이 아닌 은도금 술잔을 100세 노인들에게 선물하기로 한 것. 올해 선물 수령 대상자가 무려 3만1,747명에 달하고 앞으로도 계속 늘 것으로 전망되면서 축하의 의미가 크게 퇴색됐기 때문이다. 물론 선물 마련에 필요한 예산 증가의 부담도 선물 축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장수 노인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혜택’ 축소는 100세 축하 선물의 단가를 낮추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달 29일 공적 의료보험에 가입한 만 70세 이상 노인의 의료비 지원 축소 방안 마련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진료·요양 등 고령자들의 의료비 자기 부담 한도액을 높이겠다는 구상으로 국가의 재정 부담을 낮추고 세대 간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의도다. 장수가 더 이상 축하의 대상이 아닌 시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지 10년이 지난 일본의 현재 모습이다.


이 같은 일본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은 일본의 사례가 남의 일처럼 들리나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일본인의 기대 수명은 83.6세, 한국인은 81.5세로 불과 2.1세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또 통계청 추산으로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고령 사회, 10~15년 후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일본처럼 노인 의료비의 급속한 증가가 우리에게도 국가적 부담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통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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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유로 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민영보험의 역할이 지금보다 크게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단순히 민영 건강보험 가입을 늘려 의료비 부담을 국가와 민간이 나눠야 한다는 주장뿐 아니라 장래 노인 의료비 발생 요인을 선제적으로 줄이는 일에 함께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령 사회 의료비 대책 마련을 위한 정부와 보험업계 간의 협업은 걸음마도 못 뗀 단계다. 민영보험사들이 헬스케어 기술 등의 보험 분야 적용 방안을 검토하고 부가 서비스로 병원 진료 대행 등의 단순 건강 관리 서비스 등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의 관련 분야 규제 가이드라인이 모호하고 의료계와의 업무 중첩 문제도 잘 논의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장수 리스크는 장기간에 걸쳐 고령 사회에 대비해온 일본에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일본에 비해 고령 사회에 대한 정책적 준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는 부담을 넘어 재앙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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