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미인도’(사진)는 가장 사랑받는 우리 옛 그림 중 하나지만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 문화재’가 아니다. 겸재 정선이 금강산의 가을 풍경을 그린 대형 수작 ‘풍악내산총람’이나 나른한 봄날의 한바탕 소동이 인상적인 ‘야묘도추’가 담긴 김득신의 풍속화첩 ‘긍재일품첩’, 추사 김정희가 난 치는 법을 체득해 그려 엮은 ‘난맹첩’ 역시 국가지정 문화재가 아니다.
이들 유물을 포함한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수집한 문화재 37점에 대한 ‘보물’ 지정이 추진된다.
9일 문화재청과 간송미술문화재단에 따르면 두 기관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우선 문화재청은 간송재단이 소장한 문화재 중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탁월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보물 지정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를 통해 보물로 지정되는 문화재는 특별전,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해 탄은 이정의 ‘삼청첩’, 정선의 ‘경교명승첩’ 등이 보물 지정 대상 우선순위에 꼽힌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걸작 ‘삼청첩’은 탄은 이정이 비단에 금으로 나무·매화·난을 그려 3가지 맑은 것이라는 뜻의 ‘삼청’이라 칭하며 그 옆에 우국충정의 시를 적어 임진왜란에 위축된 조선의 문화적 자존감을 드높이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석봉 한호 등 당대 문인들이 동참해 만든 화첩이다. 조선 말 일본에 넘어갔던 것을 간송이 되찾아 온 유물이다.
문화재청은 간송재단의 주요문화재에 대한 제작 기법과 특성·보존 상태 등 자연과학적 조사를 병행해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연구 인력 양성과 교육 활동도 지원할 방침이다.
한편 전체 규모가 공개되지 않은 ‘간송 컬렉션’에는 국보 제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신윤복의 풍속도 화첩인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22점 이상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이미 속해 있다. 특히 간송이 일제 시대 당시 기와집 10채 값을 더 얹어주고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은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또 다른 해례본이 나오기 전까지 한글의 제자 원리를 알려주는 유일한 책이었다. 숭례문 방화 소실사건 이후 ‘국보1 호 재지정’ 논란이 일자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지정하자는 입법청원이 제출됐을 정도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