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 베어링스은행(Barings Bank). 이 은행은 지난 1995년 닉 리슨이라는 한 직원 때문에 232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파생금융상품 거래로 은행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던 리슨은 1995년 일본 닛케이지수 선물과 엔화 옵션에 자산을 밀어 넣었다가 14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다. 결국 베어링스은행은 한순간에 파산하고 네덜란드ING에 단 1달러에 매각된다.
우리에게는 ‘겜블(Rouge trader)’이라는 영화로 2000년 소개됐던 베어링스 파산 사건은 경제학의 오래된 화두인 ‘주인-대리인(Princpal-Agent)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16년 노벨경제학상은 이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등 부작용을 피하기 위한 분석 틀을 제공한 올리버 하트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이들 교수가 경제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계약을 분석하기 위한 포괄적 틀인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을 발전시켜 왔다고 설명했다.
1948년 영국에서 출생한 하트 교수는 캠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수학, 워릭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넘어와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정경대(LSE)와 MIT를 거쳐 지금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1995년 발간된 저서 ‘기업, 계약과 금융구조(Firms, Contracts, and Financial Structure)’는 그가 기틀을 다진 계약이론이 잘 녹아 있다. 하트 교수 아래서 수학한 한순구 연세대 교수는 “계약이론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월급을 어떻게 주는지, 그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등을 연구하는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1949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홀름스트룀도 하트 교수와 함께 계약이론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가 1979년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 대표적 사례인 고용관계·보험계약 등에서 정보 격차가 해소될 경우 더욱 효율적인 계약을 맺을 수 있음을 계량적으로 밝힌 논문 ‘도덕적 해이와 관측 가능성(Moral Hazard and Observability)’은 기업조직이론을 공부하는 경제학도들에게는 교과서로 꼽히는 논문이다. 이 두 학자의 계약이론은 비대칭적 정보 상황하에서의 계약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 등의 비효율이 투명한 계약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즉 투명한 계약이 개별 기업단위와 나아가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두 교수는 ‘기업 영역의 이론(A Theory of Firms scope)’을 공동집필했다.
이호준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 민간투자지원실장은 “하트 교수와 홀름스트룀 교수는 정보경제학의 틀을 다진 대가”라며 “기업 조직 등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는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 등을 해결하기 위한 인센티브 체계를 학술적으로 설명하고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이들의 학문적 업적을 평가했다.
노벨위원회는 계약이론이 최고경영자(CEO)의 성과연동형 보수, 보험에서의 세금 공제금과 고용인 부담분, 공공 부문 민영화 등을 분석하는 틀로 활용된다고 소개했다. 노벨이 사망한 뒤인 1969년에야 뒤늦게 노벨상 대열에 합류한 노벨경제학상의 상금은 800만크로나(약 11억원)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한편 노벨경제학상을 최다 수상한 미국은 3년 연속 노벨상에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하트 교수는 국적은 미국이지만 영국 출생이다. 또 2011년 수상한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와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 이후 4년 연속 미시경제학 분야에서 노벨경제학 수상자가 나왔다.
/김상훈기자 세종=이태규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