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도래라는 큰 변화는 우리 금융산업에 위협이자 도전과제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입니다. 다만 디지털 환경 안에서는 금융을 단지 금융으로 풀어서는 안 되며 개방형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객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20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에서 열린 제11회 금융전략포럼에서 주제 강연자로 나선 황형준 보스턴컨설팅그룹 시니어파트너는 현재 금융산업이 직면한 저성장·저금리에 대해 “단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붙어 있는 환경”이라며 “더 큰 그림에서 우리 금융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디지털 환경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로 재탄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금융산업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생존을 위해서는 금융회사들이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 파트너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간에 자본조달에 대한 니즈가 축소된다”며 “이미 이 같은 변화가 제조·유통 기업 등에서 명확하게 보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파트너가 과거 기업들과 달리 사업 확장 등을 위해 대규모 자본조달을 하지 않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예를 든 곳은 미국의 베타브랜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가진 의류 브랜드로 별도의 디자인팀이나 생산공장·마케팅팀 등을 두고 있지 않다. 기획에서 생산, 유통, 마케팅까지 모두 온라인상에서 고객 참여를 통해 진행한다. 다시 말해 공모방식으로 의류 디자인을 결정하고 제품 생산업체는 생산설비를 가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개 입찰을 받아 진행한다. 판매 역시 온라인에서 주문, 배송하는 식이다.
황 파트너는 “베타브랜드라는 신생 기업뿐 아니라 GE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도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실험에 나섰다”며 “이런 트렌드가 지속된다면 기업들의 자본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공유경제가 확대될 경우에는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전망했다.
황 파트너는 이처럼 자본조달에 대한 니즈는 줄어드는데 금융시장 내에서 자본조달처는 다양해지는 추세 역시 기존 금융회사들에 위협적인 요인이라고 꼽았다. 더불어 디지털 환경에서는 그간 금융회사들이 고객보다 우위를 점했던 정보, 즉 정보의 비대칭성이 약화된다는 점과 가상화폐 등 혁신적 기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금융 패러다임을 급속하게 바꿀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파트너는 “BBVA·블랙록·산탄데르·JP모건 등은 이미 금융회사나 금융기관이라는 기존 정체성을 버리고 디지털 기업, 정보기술(IT) 기업 등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있다”며 “우리 금융시장도 디지털 시대를 먼 미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 파트너는 디지털 시대가 가져오는 변화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역으로 이 같은 변화를 잘 이용하면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단 환경이 변한 만큼 시장과 고객에 대한 접근, 사업 방식도 크게 바꿔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BBVA나 알리안츠처럼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금융을 금융으로 풀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그동안 금융회사들이 고객의 금융 니즈가 어디에 있는지에만 주목했던 것과 달리 이들은 개인이나 사회의 본질적인 지출 욕구가 있는 다양한 지점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고객 충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파트너는 이들의 새로운 접근 전략이 결국 단순한 금융 솔루션 제공을 넘어 통합 솔루션 제공으로 확대되면서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통합 솔루션 제공을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개방형 파트너십을 비금융 분야와 다양하게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앞으로는 고객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접근보다는 장기적이고 폭넓은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조용히 다가가는 접근방식이 유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황 파트너는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기회 요인으로 시장 저변이 넓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출현으로 자산관리(WM) 시장의 잠재 고객군이 크게 넓어진 것처럼 여러 가지 디지털 기반의 혁신적인 기술의 등장은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황 파트너는 “그간 우리 금융회사들이 고수해온 수직적, 폐쇄형 사업모델을 버리고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오픈 플랫폼 형태로 대대적인 트랜스포메이션(변신)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며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가져오는 변화가 위협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가진 걸 많이 내려놓고 트랜스포메이션을 시도해야 경쟁력 있는 회사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