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본능적으로 위기상황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그런 기업들이 워룸까지 가동할 정도로 긴박하게 움직이는 것은 작금의 경영여건이 생존마저 위협할 만큼 엄혹하다는 방증이다. 마침 경주에 집결한 조선소 사장들도 “내년에 더 나빠질 수 있다”며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대비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비단 SK나 조선업계뿐이 아니다. 우리 산업계 전체에 거센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해외 수출은 끝없이 곤두박질치고 글로벌 경쟁사들의 추격은 턱밑까지 올라왔다. 잘 나가던 삼성이나 현대자동차마저 잇따른 악재로 휘청이는 판국이다. 여기다 신성장동력의 돌파구를 찾지도 못한 채 기업 때리기만 판치고 있으니 절박한 경고음이 사방에서 울리는 것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국가신용등급이 사상 최고 수준이라며 한가한 소리나 늘어놓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19일 위기대책을 논의하겠다며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만 해도 그렇다. 이날 회의는 참석해야 할 장관 17명 가운데 14명이 불참해 맥빠진 ‘차관회의’로 전락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상한 각오로 매주 회의를 열겠다고 했지만 이래서는 영이 제대로 서기 어렵다.
산업계에서는 현 상황이 2009년 금융위기보다 심각하다는 말이 무성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내년 경영전략에는 손도 대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만성적 위기불감증에 빠져있고 정치권은 대선에만 정신이 팔렸으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기업들이 먼저 위기를 감지하는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기회라는 비장한 각오로 선제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들은 조직 혁신과 사업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정부도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미증유의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할 때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