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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모든 나라는 국민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가진다

[최상진의 리뷰에세이]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올해 초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았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역사적 사실과 마주했다. 해방 후 수상한 정국에서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이 이뤄졌다는건 교과서와 다수의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온 바다. 그러나 제주 4·3사건 희생자의 규모가 당시 도민의 10%에 이르는 3만여 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순간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공포 그 자체였다.

전시관의 출구에는 브라운관이 하나 걸려있다. 홀로 단상에 올라 국가차원의 사과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남자. 4.3사건에 대해 55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를 대표해 도민 앞에 사과한 전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최고의 시대였고 최악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처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을 두 나라로 인식시킬 만큼 극단적으로 갈린다. 그의 이상과 업적을 논하는 대신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어떤 인물이 대중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야기한다.

작품은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던 노무현 후보와 2016년 20대 총선 여수을 지역에 출마했던 백무현 후보의 유세과정을 따라간다.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던 이와 그의 사상을 지키려던 이의 행보와 실패는 단순하면서도 절대적인 ‘지도자의 책무’를 돌이켜보게 한다.

영상 속 두 인물은 ‘집값이 오른다, 지역이 발전한다’는 휘황찬란한 문구로 대중을 현혹하지 않는다.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인의 자세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어떤 자격을 갖춘 자가 대중의 선두에 설 수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국가나 나아가야 할 점을 시사한다.



털털한 노무현의 웃음에도 뼈가 있다. 아이에게 “아빠한테 2번이 좋대요 해라” 하고는 아이가 “뭐가 좋은데요?”라고 묻자 “어렵다”고 답한다. 땅값·집값이 오르고, 지하철이 들어오고, KTX역을 유치하고, 산업단지를 유치하고…. 지금의 선거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올 선심성 공약 대신 ‘어렵다’고 답하는 그가 원하는 이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간은 16년이 흘러 이번 총선에 다다른다. 노무현 정신이 선거의 화두로 떠오르며 그를 그리워하던 누군가는 당선됐고, 누군가는 떨어졌다. 분열된 야권에서 그의 이상을 실현하려던 또하나의 무현은 16년 전과 같이 실패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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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노무현, 2016년의 백무현은 국가를 ‘국민의 충성으로 이룬 집단’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생활이 보장되는 공동체’라고 역설한다. 영화 중 등장하는 ‘자살은 사회적 살인’이라는 말은 그들이 해내려던 이상적인 사회의 뿌리다.

매번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시가니 돌아오면 온 나라는 노랫소리로 떠들썩하다. 그들이 내건 공약들이 다 이뤄지면 나라는 두말할 것 없이 태평성대가 된다. 그러나 막상 뽑아놓으면 대부분의 공약은 분리수거 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눈 녹듯 흔적도 남지 않는다.



작품은 16년 전 노무현 후보를 통해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외치는 듯 하다.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정치인, 시민이 주인인 나라, 그런 나라를 위해 항상 깨어 있으라고 주문한다.

지금도 대통령 당시의 노무현은 4.3평화공원 전시관 끝자락에 있는 브라운관에서 “저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라며 사과를 거듭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정치를 ‘다스린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대중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비전과 그를 실행할 만한 추진력을 갖춘 그런 지도자의 등장. 우리는 늘 그와 같은 꿈을 꾸지만 이를 이루기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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